공학섭 목사(대대교회)

약한 갈대, 많은 것 내어주며 흔들리다
깨끗한 바다 만드는 필터이며 새들의 보금자리 … 갈대밭 거닐며 창조세계 음미

▲ 공학섭 목사(대대교회)

순천만은 글자 그대로 바닷가다. 그런데 순천만에 오면 어쩐지 바닷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넓게 펼쳐진 해변을 염두에 두고 순천만을 방문한 분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바닷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순천만이 바다이면서 바다 같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순천만습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그리 넓지 않은 강이고, 그 다음으로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기 때문이다. 갈대밭의 규모는 대략 190만평 정도다. 어찌나 크고 넓은지 끝에서 끝을 다 보려면 한 나절은 꼬박 걸어야 한다. 이렇게 드넓은 갈대밭 앞에 서면 누구나 바다에 왔다는 생각을 잠시 잊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순천만에서 갯내음을 전혀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바닷가에 가면 으레 비릿한 갯내음을 맡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갯벌이 건강하고 물이 깨끗한 순천만에서는 바닷가 특유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다. 해마다 여러 강에서 녹조, 바다에서는 적조로 인하여 어족자원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지만 순천만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단 한 차례도 적조가 발생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해서 순천만이 청정바다가 되고, 깨끗한 갯벌을 갖게 되었을까? 이는 순전히 갈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갈대는 본디 깨끗한 물을 먹고 자라는 식물이 아니다. 공장에서 버린 산업하수와 가정에서 배출하는 생활하수에서 나오는 부유물을 먹고 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갈대는 강물이 바다로 합류하는 지점인 강 하구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다. 갈대는 강물이 바다로 유입되기 전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필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어디에선가 들은 말인데 갈대를 통과하면 90%이상 정화효과를 낸다고 한다.

본래 갈대는 그렇게 귀한 식물이 아니다. 성경에서 가장 약한 존재를 표현할 때 인용했던 것이 갈대다. 여자의 유약한 마음을 표현할 때 갈대와 같다고 한다. 상하기 쉽고, 부러지기 쉬운 연약함의 상징이 갈대다. 인간이 버린 구정물을 먹고 자란 갈대가 천하고 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찮게 여김 받던 갈대가 우리 마을에서는 얼마나 귀중한 보물이 되었는지 아는가?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지구의 필터 역할만으로도 갈대는 존재감이 충분하다. 인간이 오염시킨 강물을 자신의 온 몸을 던져 막아내고 정화를 한다. 나쁨을 좋음으로 바꾸는 착한 식물이다. 갈대의 쓰임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갈대밭은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새들의 놀이터도 되고, 서로의 짝을 만나는 장소도 되고, 새끼를 치는 산실도 된다.

▲ 순천만 갈대밭은 깨끗한 바다를 위한 필터, 생명의 산실,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캔버스 역할을 한다./사진 권남덕 기자 photo@kidok.com

옛날 농경시대에는 푸른 갈대를 소의 먹이로 사용했고, 겨울철에는 화목으로도 사용했다. 김발을 만드는데 사용하는가하면, 이엉을 엮거나 울타리를 막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또 갈대꽃으로 빗자루를 매어 생계를 잇기도 하고, 자녀들의 학자금 마련하는데도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갈대 빗자루는 먼지를 쓸어내는 기능이 청소기에 버금갈 정도로 탁월하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갈대꽃 채취도 자유롭게 할 수 없어 많은 수량의 빗자루를 맬 수 없다.

또 갈대 빗자루를 매는 장인들도 전국에 불과 3명밖에 없다. 우리 마을의 빗자루 매는 장인이 바로 우리 교회 장로님이시다. 이제 갈대 빗자루를 매는 일은 상품이 아니라, 장인 그 자체로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갈대에 대한 가치와 쓰임새는 시대마다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심미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순천만습지를 방문하는 탐방객들에게 ‘무엇을 보려고 순천만에 왔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갈대밭을 보러왔다’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 순천만은 한참 대목이다. 11월은 갈대꽃이 하얗게 피어올라 장관을 이룬다. 연중 가장 많은 방문객이 몰려오는 계절이다. 순천시는 순천만 갈대 때문에 먹고산다고 할 정도로 갈대밭이 보물이 되었다. 한 때 굴뚝 산업이 발달되지 않은 것이 열등감으로 작용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원시적인 자연을 간직한 곳일수록 더 귀중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 순천만이다. 가장 낙후된 문명 소외지역이 이렇게 큰 보물로 부각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순천만의 갈대밭은 사시사철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은빛 찬란함으로 장관을 이루는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 한 100번쯤 보지 않고는 순천만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했다. 그래서 왔던 사람들이 또 온다. 오늘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갈대밭을 거닌다. 갈대밭은 그냥 걷기만 해도 좋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며 거닐면 더욱 좋다.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던 갈대밭을 연상하거나, 에스겔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갈대지팡이’와 같은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떠올릴 수도 있다.

우리 교회는 매일 정오가 되면 종을 울린다. 교회 종소리와 갈대밭의 조화는 땅 위에 가장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한다. 종을 울리는 이유는 듣기 좋아서만은 아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갈대밭을 거닐며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믿음의 길을 잠시 떠난 분들에게는 어릴 적 교회를 다녔던 추억을 되살려주고 싶어서다. 그리고 비신자들의 무거운 마음까지 어루만져주었으면 하는 소원을 담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정오의 종소리가 눈처럼 갯벌과 갈대숲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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