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디모데 목사(예하운선교회 대표)

▲ 김디모데 목사(예하운선교회 대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교회는 4월 20일 부활 주일을 앞두고 있었다.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는 이 참담하고 비통한 사건 앞에서, 필자는 목회자로서 부활절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잔치’로 비춰지는 모습이 우려스러웠다.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고 함께 마음아파하며 무엇인가 돕고 싶어 하거나 참여하고 싶었던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는 행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돕는다 해도 어떠한 방법으로 도와야 할지 막연했기 때문이다. 진도 팽목항으로 가서 봉사활동을 하자니 거리가 부담스러웠고 서울 광화문으로 가자니 시위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괴리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행사나 프로그램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필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세월호 관련 행사들을 기획했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과 함께 걷는 길 ‘동행’과 세월호 특조위를 돕기 위한 ‘진실을 응원합니다’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한국교회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세월호 문제에 책임을 함께 통감하며 참여 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세월호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면서 현장에서 만났던 비기독인들의 말들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교회는 세월호 참사에 관심 없지 않나요?”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월호 돕겠다고 후원해 주신 게 맞습니까?” “교회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군요.” 세월호 참사 이후 그들이 체감했던 한국교회에 대한 인식이 그랬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여러 모양으로 세월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현장에서 체감한 한국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적어도 세월호와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는 최악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내세적 의미의 ‘천국’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는 물론 바로 ‘이 땅’ 우리가 소속되어 살고 있는 우리 ‘사회’도 그 범주에 해당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적잖은 교회들이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거나 부재되어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세월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행위를 소위 ‘사회 운동’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월호 문제에 대한 참여 행위는 단순한 사회 운동이 아닌 ‘하나님 나라’ 운동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외쳤던 ‘정의’와 ‘공법’이 하수 같이 흐르는 세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 그 ‘간극’을 좁혀 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말씀을 현실에서 살아내는 것과 같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양사고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구조악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하나의 결정체라 볼 수 있다. 온 국민이 미안해하며 거리마다 곳곳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문구를 새긴 현수막을 내걸었다. 왜 미안한 것일까? 이 희생, 특히 다음세대 어린 학생들의 희생에는 기성세대들의 잘못이 있었고 우리 모두의 잘못이 있었다. 여기서 잘못이란 이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사회 구성원이었던 우리 모두에게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교회 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는 어느덧 1000일을 지나 이제 3주기를 향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이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인양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아홉 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아직도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시국을 맞이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 참사는 한시적 가십거리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참여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일은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의’와 ‘공법’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신앙’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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