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지난 주 <기독신문> 28면에는 뜻있는 몇 교회의 협찬으로 ‘다시 종교개혁 앞에서’라는 슬로건과 함께,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을 내건 테제의 문이 있는 비텐베르크성교회가 전면광고로 게재되었다.

‘다시 종교개혁 앞에서’라는 슬로건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이는 작금의 우리 총회가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 아닌가. 종교개혁 앞에서란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될 내적 요인들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개혁 되지 않으면 안 될 교회의 문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 앞에서 오늘 우리들 신앙의 현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흔히 교회사가들은 교회의 변질 혹은 교회의 부패를 4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4세기 이후의 교회를 콘스탄틴적 기독교라고 부른다. 물론 이것은 313년 기독교 공인을 교회의 변질 즉, 국가권력과의 야합을 전제로 한 분기점으로 보는 이들의 견해이다.

우리는 다시 종교개혁 앞에서라는 이 슬로건 앞에서 16세기 교회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교회의 부패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부패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직자의 부패, 목회자들의 부패 아닌가. 1447-~1517년 어간의 교황 중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고, 15세기말 콘스탄츠 교구의 경우 매년 1500명의 사생아를 출산했다. 중세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직교육의 부재였다. 잘못된 교육, 올바르지 못한 교육이 중세교회를 부패시켰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성직자의 무분별한 양산은 중세교회가 부패할 수밖에 없는 인적요인이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성직교육의 불균형과 과도한 성직자의 배출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4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성직자 수는 1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당시 남한 인구를 4500만으로 본다면 인구 450명당 1명꼴의 성직자가 있다는 통계였다.

당시 성직자 중 10%가 임지없는 비활동 인력으로 알려졌고 우리 교단은 당시 1500명의 교역자가 임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모두 종교개혁 앞에서 내려놓을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자. 성직자의 과도한 배출이 낳은 결과가 무엇인가. 개척교회의 난립과 교회 분열 아닌가. 그리고 성직자 간의 과도한 경쟁과 대립이라는 극한 상황이 오늘의 우리 총회의 모습 아닌가?

종교개혁 500주년 앞에서 과감한 내부적 수술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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