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는 문명의 대충돌이란 맥락에서 보아야만 한다.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 세력의 팽창주의와 기독교가 그 뿌리요 열매였던 중세 서유럽의 공고한 기독교 왕국 간의 문명 대충돌에 의한 것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바이킹들이 노략질을 포기하였을 때였고, 교황권이 최절정에 달해 있을 때였다. 이때는 스콜라 철학이 그 모습을 드러내려고 중세사에서 태동하던 시기였다.

교황권의 절정을 상징하던 마천루가 고딕식 성당의 상징처럼 되어 질 때 나타난 가장 순진하면서도 추악한 사건이 십자군이었다. 십자군 원정은 1096년 클레르몽에서 제1차 원정이 시작된 이래 1300년까지 8차에 걸쳐 중세를 얼룩지게 한 사건이었다. 제1차 원정은 셀주크 투르크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셀주크 투르크는 알프 아르슬란이 죽고 아들 말리크샤 시대에 전성기를 맞는다.

이후 1092년 그러니깐 제1차 십자군 원정이 있기 4년 전 셀주크 제국은 분열된다. 당시 소아시아 반도에는 술탄 컬리즈 아르슬란이 세운 왕국 셀주크럼(Rum)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1095년 이 제국 셀주크럼의 술탄은 비쟌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90km 떨어진 콘스탄틴 대제의 별장이 있었던 역사적 도시 니케아 즉 이즈닉까지 점령한다.

결국 이 상황에서 325년 역사적인 니케아 공의회 장소인 이즈닉은 이 왕국의 수도가 되고 콘스탄틴 대제 이후 비쟌틴 제국의 상징과 같았던 비쟌틴 황제의 별장은 술탄의 유흥장소로 전락된다. 당시 비쟌틴 제국은 마지막 남은 제국의 본체인 소아시아마저 영구히 잃을 위기에 놓인다. 한마디로 수도 콘스탄티노플마저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날개 꺾인 독수리 비쟌틴의 황제 알렉시오스가 기댈 곳은 서유럽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 알렉시오스는 교황 우르반 2세에게 원군을 청한다. 이 상황을 탐욕의 사람인 교황은 동방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 시킬 수 있는 호기회로 생각한다. 이런 잘못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 1095년 11월 프랑스 서남부 클레르몽의 페랑성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세계사에 가장 추악한 사건인 십자군 전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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