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20년 동안 외국인노동자 사역 외길 걸어
삶의현장 찾아 귀 기울이며 신뢰의 전도 집중

▲ 최고수 목사(가운데)는 몽골을 방문해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9)
인천시 서구 공촌동에 위치한 공촌교회(최고수 목사)는 1월 첫째 주에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공촌교회의 20주년이 뜻 깊은 이유는, 20년 동안 외국인사역이라는 외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터부시했던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문을 열고 국내 공장에 외국인의 취업을 허락했다. ‘외국인노동자’라고 불렸던 이들은 주로 3D 업종에 근무했으며 서툰 언어와 문화적응력 때문에 비인격적인 대우를 당하기 일쑤였다.

공촌교회가 세워진 인천광역시 서구지역의 외국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1998년 IMF를 전후해서 공장들이 멈춰섰을 때 외국인들은 하루아침에 숙소를 잃고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공촌교회 근처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콘테이너에 모여 몸을 맞대며 추위를 견뎌야 했던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공촌교회는 상처 입은 외국인들을 초청해서 위로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사역을 시작했다. 교회로 모인 외국인들은 밀린 월급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를 몰라 쩔쩔 맸고, 자신들이 당한 인격적 모독이나 폭력에 대해 하소연했다. 최고수 목사는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했고 힘닿는 대로 고민을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다.

▲ 공촌교회는 20년 동안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펼쳤다. 사진은 외국인 근로자 초청잔치

 그러던 중 몽골 철도대학 교수 출신의 외국인이 공장 숙소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교회의 헌신적인 사랑을 힘입어 기적적으로 회복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교회는 몽골인들에게 큰 신뢰를 얻었고 개척 첫해에 몽골인 성도만 70여명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최 목사는 늘어나는 몽골인들을 집중적으로 돌보기 위해서 2000년, 교회 내에 ‘몽골공동체’를 형성했다. 몽골인들은 대단한 결집력을 보였으며 고국에 돌아간 동포들이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몽골을 위해서 교회건축운동을 벌일 정도였다. 주일예배와 각종 봉사, 체육대회나 축제 등의 특별행사도 활발히 진행했다. 2007년까지 교회 사역은 확장 일로였다.

▲ 성탄절 예배 사진

 몽골인 뿐만 아니라 동남아, 중국, 러시아인들이 찾아왔고 외국인들의 거주지역마다 한글공부와 성경공부 모임이 조직됐다. 해외사역도 결실을 맺어서 모두의 소원이었던 몽골교회 부지를 구입하고 2003년에 교회를 건축하는 기쁨을 맛봤다. 몽골인들의 자립을 위해서 울란바토르 인근에 농장을 운영했으며 현지의 몽골인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공촌교회 외국인 사역은 2008년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지역 개발로 인해 교회 인근의 공장들이 검단외곽과 김포지역으로 이동을 했고 국가의 관심으로 인해 외국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시설들이 늘어나게 됐다. 이로 인해 교회로 찾아오는 외국인들의 숫자는 줄었고, 더불어 몽골 현지 교회 사역도 시련을 맞이했다. 몽골 현지의 경제개발 사역도 생산수익보다 더 많은 원가를 투자해야 하는 악순환을 극복하지 못했다.

최근 공촌교회는 외국인들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서, 과거보다 더 나아진 시설이나 제도로 해결해 줄 수 없는 마음의 문제를 어루만져주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외국인들이 일하는 공장을 방문해서 함께 예배하고 숙소를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성경공부와 한글공부 역시 공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 몽골 가족 방문

 또 외국인 중에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가정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몽골현지 프로젝트는 멈추었으나 현장을 방문해서 공촌교회를 거쳐 귀국한 이들을 양육하는 일은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촌교회 출신 몽골인들과 그들의 가족 중에는 목회자와 다수의 교회지도자들이 배출됐다.

최고수 목사는 “2017년 현재 국내에 와있는 외국인들은 여전히 많으며 그 숫자는 무려 200만명에 가깝다”면서 “이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이며 전도의 대상자들”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사역에는 굴곡이 있게 마련이지만 전도해야 할 이들이 있기에 교회는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며 다짐을 보탰다.

공촌교회의 20년은 한국교회 외국인 사역의 20년이기도 하다. 그리고 국내에는 어려운 형편 가운데도 외국인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교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환경은 변화하지만 구원받아야 할 이들은 여전하기에 공촌교회 외국인 사역은 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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