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석(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전문위원)

0.5%의 개종 무슬림은 이슬람 복음화 놀라운 씨앗이다
2000년 이후 800만 명 기독교 받아들여 … ‘기독인 헌신적 삶에 감동’
세계 곳곳서 개종운동, 희생의 사역자 필요하다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교회 역사학자인 데이빗 게리슨(David Garrison)은 <프리미어 크리스채너티> 6월호에 “2000년 이후 800만 명의 무슬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놀라운 일이다. 1400년 이슬람 역사 속에서 이렇게 많은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적은 없었다. 최근에 와서 이슬람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슬람권에 최초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Francis of Assisi, 1181~1226)였다. 그는 5차 십자군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집트의 통치자인 술탄을 방문하여 그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열매는 없었으나 이슬람 선교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같은 해에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조직한 수도회의 수도사들을 모로코로 파송했는데 다섯 명이 순교하였다. 그 후에 몇 선교사들이 이슬람권으로 들어갔다. 19세기에는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사무엘 쯔머(Samuel Zwemer, 1869~1952)가 레바논으로 들어가서 21년 동안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역하였다. 이슬람권에서 선교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유럽과 이슬람과는 약 1400년 동안 전쟁을 해온 불편한 관계는 이슬람 선교의 장애물이 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 꾸란에 나타난 기독교에 대한 이해

꾸란에 ‘성서의 백성’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의미하는데, 이 명칭은 54번 정도 나타난다. 또한 ‘복음서의 백성’이란 특별한 명칭이 단 한 번 나온다(꾸란 5:47). 오늘날 ‘기독교인’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안 나싸라’(an-Na,sara)이다. 이는 꾸란에 14번 사용되었으며, 7세기의 기독교인을 말한다. 꾸란에 나타나는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이중적이다. 먼저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무슬림들은 유대인과 다신교인을 만날 때보다, 기독교인을 만날 때 더 우호적인 대접을 받는다. 왜냐하면 기독교인 중에 오만하지 않은 성직자와 수도사가 많기 때문이다(꾸란 5:82). 반면에 꾸란 5장 51절에 따르면, 무슬림들은 기독교인을 친구나 보호자로 삼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따르라고 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꾸란 2:120). 더 나아가 꾸란은 직접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공격한다. 삼위일체를 말해서는 안 된다(꾸란 4:171). 이슬람에서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을 셋 중에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불경하며(꾸란 5:73), 그것은 다신교의 오류에 빠지는 일이다(꾸란 5:77). 꾸란은 ‘예수가 메시아이며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인 것’을 인정하면서도(꾸란 3:45~49), 성육신을 부인하고 예수가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꾸란 3:59, 5:116~117). 또 예수의 승천을 받아들이지만(꾸란 5:117, 4:157~159),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고 선언한다(꾸란 4:157~159).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아라비아반도에서 지배력을 확보했을 때, 기독교인들을 신앙의 공동체에서 배제하였다. 시리아에 있는 비잔틴 기독교의 전초기지에 군대를 보내겠다는 그의 군사적 결단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불행한 대결의 시작이었다.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첫째,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인이 안 된 것을 알라에게 감사한다. 꾸란 첫 장(al~fatihah, 개경장)은 전 세계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마다 아랍어로 배워서 암송하는 장이다. 모든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꾸란의 첫 장을 기독교의 주기도문처럼 암송한다. 마지막 구절은 “그 길은 당신께서 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지 않는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꾸란 1:7절)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노여움을 받은 자’는 유대인을 말하며, ‘방황하는 자’들은 기독교인이라고 꾸란에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무슬림들은 예배 때마다 ‘기독교인이 걷지 않는 올바른 길’을 걷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둘째, 꾸란에서는 기독교과 유대인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성전하라 그들이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꾸란 9:29) 따라서 이슬람의 정권 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은 2등 시민(Dimmi)으로서의 대접을 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모든 종교 위에 있기 때문이다(꾸란 48:28).

셋째, 꾸란은 무슬림들이 최고의 피조물이며, 우월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을 대부분 사악한 자들이라고 한다. “너희는 가장 좋은 공동체의 백성이라 계율을 지키고 악을 배재할 것이며 알라를 믿으라 만일 성서의 백성들이 믿음을 가졌더라며 그들에게 축복이 더했으리라 그들 가운데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사악한 자들이더라”(꾸란 3:110).

넷째, 꾸란에서는 기독교인들은 지옥에 간다고 말하고 있다. “실로 성서의 백성들 중에 진리를 거역한 자들과 불신자들은 불지옥에 있게 되리니 그들은 그 안에서 영주하매 가장 사악한 무리들이라”(꾸란 98:6). 이슬람에는 7개의 지옥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유대인은 5번째, 기독교인은 6번째인 하비야(Haviya)에 간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이슬람은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또한 꾸란에는 배교자에 대하여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꾸란 4:89 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2.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의 역사

1) 이슬람의 시작에서 제국주의까지

이슬람이 시작되고 처음 3세기 반 동안 개종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무함마드가 죽은지 350년이 지난 후에 개종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압바스 왕조 당시에 시리아 동쪽에 있는 도시 니시비스(Nisibis)에서 세금을 착취하던 이슬람 지도자에 대한 반발로 1만2000명의 남자와 부인들과 자녀들이 비쟌틴 사제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아스꼴리의 콘라드(Conrad of Ascoli, 1234~1289)는 이탈리아의 귀족출신으로서 프란체스코 수도사였는데 리비아에서 사역을 하면서 그의 검소한 삶과 탁월한 설교 그리고 열정적인 사역을 통하여 6400명의 무슬림들이 개종을 하였다. 1492년 이베리아 반도의 최후의 이슬람 지역이었던 그라나다(Grenada)가 스페인에 정복당한 후에 헤르난도(Hernando de Talavera, 1428~1507) 는 성직자들에게 아랍어를 배우게 하여 무슬림들을 전도하였다. 그 결과 1490년부터 1500년 사이에 수천 명의 무슬림들이 세례를 받았다.

2) 제국주의에서 현대까지

1605년 네덜란드 군대는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 상륙하였다. 네덜란드 식민지가 된 인도네시아에 245명의 네덜란드 선교사가 인도네시아 전 지역에 파송되었다. 그들로 인하여 약 8만 명 이상이 개종을 하였으나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였다. 1914년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에 의하여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사역했던 자바 섬에 무슬림 1614명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선교사들이 뿌려놓은 씨앗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오늘 날 자바의 사도라고 불리우는 사드라크 수라쁘라나따(sadrach surapranata, 1835~1924)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자랐으나 32세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자바 원주민 기독교인으로서 자바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무슬림들과의 공격적인 논쟁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가 죽을 무렵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은 약 만 명에서 2만 명 정도였다. 프랑스는 1830년에 북부 아프리카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는데 1930년 후반에 약 7000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생겼다. 기독교는 북부 아프리카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지만 개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3. 오늘날의 개종

1979년 이란의 혁명은 이란인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1980년 중반에 많은 무슬림들이 아르메니안 교회로 몰려들었다. 이란 정부가 박해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 후반에 수천 명의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1990년 알제리 정부군과 원리주의자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서 10만 명이 죽었다. 이 무렵 베르베르(Berber)인들 사이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에 약 1만 명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에서 약 천 명의 개종자가 생겼다. 1967년 인도네시아에서 수하르토(Suharto, 1921~2008)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5개의 종교를 정부가 허락하였다. 이슬람, 가톨릭, 기독교, 힌두교, 불교였다. 1971년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약 187만 명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물론 모두 무슬림은 아니였다. 화교들이 포함되었지만 기독교인구가 늘어난 것은 확실하다. 자바섬 중앙에 있는 1만 2000명의 성도가 출석하는 하나님의 교회 뻬뚜르스 아궁(Petrus Agung) 목사에 의하면 2011년 10월 28일 이슬람에서 개종한 30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10월 한 달 동안에만 3800명이 세례를 받았다.

2002년 북부 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80개의 교회가 세워진 것을 확인하였다. 이보다 더 많은 개종자들은 숨어서 예배를 드린다. 오늘 날 터키에는 약 100개의 교회와 최소한 1000명이 넘는 세례교인들이 흩어져서 예배 드리고 있다. 투루크메니스탄에 오순절 교회를 통하여 3000명의 교인들이 있고 그 가운데 약 1000명이 세례를 받았다. 서부 아프리카의 해변을 따라서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다. 오늘날에는 약 5000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데이빗 게리슨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이슬람권 69곳에서 개종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일어난 놀라운 역사이다. 800만 명이라고 하면 무슬림 전체인구 16억 명에 비하여 0.5%밖에 안되는 숫자이다. 그러나 150년 전 영국 웨일즈의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죽음을 당할 때, 한국에는 단 한 명의 기독교인도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0.5%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최근에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700명을 상대로 개종한 이유를 연구했는데 첫째, 선교사들을 포함하여 기독교인들의 헌신적인 삶에 감동을 받아서 둘째, 꿈이나 병 고침 등의 초과학적 역사를 통하여 셋째, 이슬람에 대한 회의(懷疑)라고 밝혔다. 여전히 이슬람권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사역자가 필요하다. 앞으로 이슬람 선교는 더 많은 희생과 순교를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초대교회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교회는 순교자의 피 위에서 성장한다”고 했다. 이미 그런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복음을 무슬림들에게 가지고 갈 것 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역에 한국 교회와 한국 기독교인들이 쓰임 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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