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대책 기획] 교회와 선교현장 동반성장을 꿈꾸다 ② 관악명성교회와 필리핀 세인트버나드 이야기

가난 대물림 막고 차세대 지도자 양육위해 지속적 전인 교육 진행
지역 교회들과 전략적 협력, 영적 은혜 나누며 건강한 변화 이끌어


비포장 길에서 내려 다시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들길을 걸어 들어가야 세라니(Rose mai Seranea·17)의 집이 보였다.

나무와 양철로 얼기설긴 만든 작은 집에서 세라니는 부모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근처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날씨가 궂을 때는 산에 올라가 열매를 구했다. 그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지금은 결혼을 해 따로 살고 있는 세라니의 오빠를 포함해 네 식구가 먹고 살아야 했다.

문제는 세라니의 공부였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고 공부를 잘했던 세라니였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은 늘 발목을 잡았다. 초등학교는 수업료는 없지만, 도화지며 색연필이며 각종 학습 도구를 사는 데는 돈이 필요했다. 그 돈이 없어 초등학교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주위에 수두룩했다.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해 하던 세라니 어머니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소문이 들렸다.

▲ 기아대책 CDP 사업은 필리핀 세인트버나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고 있다. 기아대책 이진호 선교사(가운데)가 주일예배에 참석한 아이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근처 교회에 가면 기아대책이라는 엔지오(NGO)를 통해 학교 교복이며, 신발, 학용품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세라니의 손을 붙잡고 교회를 찾았고, 세라니는 CDP(어린이개발사업)를 통해 지금까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후원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세라니는 “한국에서 보내주는 후원금 덕분에 지금까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도 갖게 됐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유원식)은 2010년부터 필리핀 레이테주 세인트버나드에서 CDP(Children Development Program·어린이개발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6년 2월 11일 세인트버나드는 죽음의 땅이었다. 해발 750미터의 산이 삽시간에 무너져 1200여 명의 주민들이 죽었다. 주민 상당수가 소작농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던 세인트버나드 주민들에게 산사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이었다. 수많은 엔지오들이 긴급구호에 나섰고, 수개월 동안 세인트버나드 주민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살 집을 마련해주고 떠났다. 기아대책도 그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기아대책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그 후에도 남아 사역을 계속했다.

특별히 가난의 대물림을 막고, 아이들을 차세대 지도자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전인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한국에서 일대일 결연자를 모집해 2010년부터 CDP를 시작했다. 전인적 성장을 위해 영적영역에서는 주일학교, 주중 제자훈련, 기초 지도자 양성 훈련, 여름캠프 등을, 교육적영역에서는 주말학교, 교복신발학용품 지원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 신체적영역에서는 체육대회, 의료검진 등을 진행하고, 사회정서적영역에서는 생일잔치와 부활절연합예배, 어린이합창단, 소풍 등을 진행하고 있다.

특별히 주말학교는 획기적이었다. 세인트버나드 인근에 있는 대학교(SLSU)와 협약을 맺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대학생들이 주말마다 자원봉사자로 나서 학습지도를 해 지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인트버나드 CDP를 책임지고 있는 기아대책 이진호 선교사는 “일대일 결연자가 계속 늘어 현재 CDP에 참여하는 학생은 400여 명에 달하지만, 지역이 전체적으로 가난한 탓에 여전히 수효를 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CDP는 지역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진행되는데, 세인트버나드의 경우 지역교회 중심으로 사역을 벌이고 있다. 지역교회 목회자들과 CDP 정신을 공유하고, 지역교회가 CDP센터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실제 지역교회들에는 CDP 아이들이 소속돼 있으며, 목회자들은 프로그램 기획부터 시작해 집행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파니안교회(Pannian Church)에서 CDP를 시행하고 있는 헥토르(Hector) 목사는 “기아대책은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고, 교회가 앞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단적으로 학용품을 나눠줄 때도 기아대책 선교사가 아니라 교회에서 목사가 나눠주게 한다”며 “이런 과정들을 통해 교회 인지도가 많이 높아지고, 교인도 2010년 20여 명에서 지금은 100명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헥토르 목사는 또 “CDP는 전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영적이고 도덕적인 성숙을 가르치고, 아이들의 흡연과 음주를 막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CDP는 혜택을 받는 아이들뿐 아니라 가정에도 건강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17살 로살린(Rosalyn)은 2011년 CDP를 받게 된 후부터 시간이 되면 교회를 찾았다. 어머니 지나(Gina·51)씨는 “딸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할 일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교회에 가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로살린의 변화는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머니를 비롯해 로살린의 언니와 여동생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교회 출석은 뜻밖의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교회의 소개로 대학가에 식당을 열게 된 것이다. 로살린의 아버지는 소작농이었다. 아들 두 명을 포함해 5남매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아플 때 이웃에게 자주 돈을 꾸러 다니며 눈물을 많이 흘렸던 지나씨에게 식당 영업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지나씨는 “로살린이 CDP 덕분에 잘 자라고, 내가 식당 일로 돈을 벌어서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어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CDP는 교회 개척에도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기아대책은 검증을 거친 현지인 목회자가 세인트버나드 지역 내에서 교회를 개척할 경우 전략적으로 25명 가량의 아이들이 일대일 결연 혜택을 맺도록 하고 있다. 교회 개척과 동시에 25명의 아이들로 주일학교를 열고, CDP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CDP를 시행하는 교회는 2010년 4개였던 것이 현재는 12개 교회로 늘어났다.

CDP는 지역 교회들의 연합의 기틀이 되기도 한다. 지역 교회 목회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CDP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기획, 시행하는 것을 비롯 한 달에 한 번씩 연합예배를 가진다. 또 여름에는 400여 명이 모이는 연합여름캠프를 열어 단합을 도모한다.

헥토르 목사는 “다른 엔지오들은 사회복지에만 관심이 많은데, 기아대책은 거기에 더해 영적인 은혜를 나누는데 관심을 많이 둔다”며 “그것이 다른 엔지오와 다른 점이고 목회자들이 더 애정을 쏟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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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일대일 입양’으로 선교 일상화


서울 관악구 명성교회(김인환 목사)는 지하철에서 가깝다는 것 외에는 지리적 여건이 좋지 못하다. 예배당은 오래된 빌라촌 가운데 위치한 데다, 교육관도 없고, 주차장도 변변치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주 물어물어 명성교회를 찾아온다.

2004년 부임한 김인환 담임목사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었던 교회 분위기를 선교적이고, 교육에 투자하며, 이웃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로 바꿨다. 특별히 선교는 명성교회의 영적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요인이 됐다.

▲ 명성교회 고등부는 매년 겨울 세인트버나드로 단기선교를 떠난다. 단기선교는 명성교회 전체에 선교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교회설립 40주년이 되던 2010년. 김인환 목사와 명성교회는 어떻게 하면 40주년을 보다 의미 있게 할 수 있을까 기도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이벤트보다 생명 살리는 일을 하자”고 결정했다. 그 방법으로 ‘종족 입양’을 떠올렸다. 미전도종족 한 곳을 입양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후원하자는 생각이었다. 어느 종족을 입양할까 찾는 가운데, 기아대책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필리핀 세인트버나드를 소개받았다. 마마누아족이라는 소수 민족이 사는 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인트버나드는 2006년 산사태로 단 7초만에 1200여 명이 매몰된 눈물의 땅이었다. 세인트버나드를 소개받은 지 일 주일 후에 김 목사는 장로 세 명과 함께 직접 세인트버나드를 찾았다. 그리고 눈이 크고 환한 미소를 가진 마마누아족 아이들을, 재난 속에서 희망을 갈구하는 세인트버나드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었다.

답사 이후 명성교회는 마마누아족을 중심으로 한 가정이 세인트버나드 아이 한 명씩을 입양했다. 입양 가정들은 아이들을 위해 매달 3만원씩을 후원한다. 현재 입양한 수는 100여 명으로, 한 가정이 두세 명을 입양한 경우도 여럿이다.

명성교회는 일대일 입양과 함께 매년 겨울방학 때 고등부 1학년 전체를 세인트버나드에 단기선교로 보내고 있다. 항공료는 전액 교회가 지원한다. 열흘 가량 노동을 하며 땀 흘리고, CDP센터를 겸하고 있는 지역교회들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보며, 또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학생들은 가치관이 바뀌고 삶이 바뀐다. 공부를 왜 해야 하며,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감사를 배운다.

세인트버나드 아동 일대일 입양 이후 명성교회는 선교가 일상화됐다. 김인환 목사는 “내가 부임할 때 우리 교회는 선교를 잘 몰랐다. 후원하는 선교사가 서너 명 있었는데, 어디에서 어떤 선교를 하는지 전혀 정보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며 “그러나 기아대책과 협력한 후부터 많은 분들이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선교적 마인드를 품게 됐으며, 더불어 교회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 기아대책 선교사가 상주하고 있어, 아이들을 충분히 돌볼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거기에 후원자와 아이들 간 일대일 결연을 맺는 것에 그치지 않고, CDP 사업을 전개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선교지에서 떡과 복음이 함께 필요한 상황에서 기아대책 같은 전문 엔지오와의 결연 선교가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기아대책 선교사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선정하면, 지역 교회가 후원하고, 다시 기아대책이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복음과 떡을 함께 나누는 구조가 새로우면서도 효과적인 선교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CDP 사업 이후로 교회가 4군데에서 12군데로 늘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더 많은 지역 교회들이 일대일 결연을 통한 협력 선교에 관심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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