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들과 휴가비 전달 프로젝트 진행

“작은 공동체지만 이웃 사랑 차곡차곡 쌓아갈 터”

“아, 저 분이다.”
황영심 권사(빛고을광염교회)는 8월 3일 동네 사거리에서 폐지가 가득 실린 짐수레를 발견하곤 곧장 내달렸다. 일단 수레를 멈추게 한 후 황 권사는 다짜고짜 시원한 음료수부터 한 병 내밀었다.

▲ 폭염 속에서도 폐지 줍는 일로 생계를 잇는 이웃에게 휴가비를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빛고을광염교회 성도의 모습.

어리둥절하며 음료수를 받아든 수레 주인은 연이어 황 권사가 건네는 봉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봉투에는 10만원이라는 적잖은 돈이 들어있었다. 휴가비로 쓰시란다. 이유 없이 주는 돈은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기어이 쥐어주며 황 권사는 뜻밖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빛고을광염교회를 담임하는 박이삭 목사에게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발견한 사진 하나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폐지를 가득 주워가던 한 노인이 폭우로 인해 종이가 젖어 못쓰게 되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굵은 빗방울 쏟아지는 도로가에 주저앉은 모습이었다. 긴 가뭄 뒤 내린 단비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생계를 방해하는 고난이고 슬픔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안 돼 청주에서 폐지를 줍던 어느 할머니가 폭염에 쓰러져 숨진 사건이 보도되었다. 청주 수해현장에 온 교회가 복구 작업 지원 차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박 목사에게는 이 사건이 도무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때마침 한 성도가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노인들을 돕는 사역을 제안했던 참이었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휴가비 전달하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체 교우들이 길거리에서 폐지 줍는 사람을 마주치면, 몰고 가던 차를 일단 멈추고서라도 만나 시원한 음료수 하나와 10만 원짜리 휴가비 봉투를 전달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교우들이 일단 휴가비를 선 지급하면 휴대폰 인증샷 등을 통해 확인하고, 교회 재정부에서 추후 정산하기로 정했다.

“온종일 고생스럽게 폐지를 주워 팔아도 하루에 5000~6000원 정도 벌이가 고작이라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10만원이면 폐지 줍는 분들의 한 주 소득에 조금 더 보태드릴 수 있겠다 싶어 휴가비로 나름 책정한 것입니다. 혹서기만이라도 일을 쉬고 휴가를 보내시라고 말입니다.”

황 권사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수레주인은 비로소 상황을 납득하고 기쁜 마음으로 봉투를 받아들었다. 물론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는 이 뜻밖의 휴가비가 올 여름 최고의 선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 독거노인 나들이.

이렇게 개시된 휴가비 프로젝트는 3주째 이어지고 있다. 빛고을광염교회의 인터넷 밴드에는 심심찮게 휴가비를 전해주는 인증샷들이 올라온다. 사진들 속에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행복해하는 표정들이 담겨있다.

빛고을광염교회는 개척한 지 1년 밖에 안 된, 장년 성도 25명의 작은 공동체다. 한국교회의 대표적 섬김 공동체로 잘 알려진 서울 광염교회(조현삼 목사)의 후원으로 광주광역시 첨단2지구에 교회를 설립하면서, 이름과 정신까지 함께 물려받아 사역해오는 중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빛고을광염교회가 지역아동센터, 독거노인, 외국인노동자,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가난한 목회자 등 국내외 어려운 이웃들을 직접 찾아가 돕는 사업을 펼친 횟수가 45차례, 금액은 무려 2060만 원이 넘는다.

따로 독지가가 있어서 교회에 재정 후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교우들끼리 열심히 정성을 모으고 스스로 절약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한 결과가 차곡차곡 쌓인 결과이다.

▲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노동자 가정 방문 사역, 말레이시아 의료봉사 등 빛고을광염교회가 이웃사랑을 나누는 현장들의 모습.

폐지 줍는 노인 휴가보내기와 함께 빛고을광염교회가 요즘 추진하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냉장고 채워주기’이다. 주로 어린 자녀들을 둔 영세민 가정들을 지역 주민센터의 추천으로 선발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냉장고에 고기와 과일 등을 채워주는 것이 프로젝트의 내용이다.

담임목사가 처음 개시한 이 프로젝트 또한 점점 모든 교우들에게로 확산되는 단계를 넘어서, 성도들의 친구와 지인들 혹은 빛고을광염교회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웃 교회 목회자들까지 동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박이삭 목사는 “가능한 한 이런 프로젝트들이 우리 교회의 차원을 넘어서 지역사회 전체의 운동으로 번져가기를 소망한다”면서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언제어디서나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하고, 세상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게 하자는 목회철학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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