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숙은 수직선, 수평선, 곡선, 사선 등 선과 면의 본질적 요소를 탐구하는 작가다. 화면은 보편적 회화 수법에서 탈피하여 추상성과 상징성을 띈 기하학적 형태 미학에 집중한다.

화면에는 대지, 나무, 새, 열매, 항아리, 하늘 등의 자연물을 독특한 수법으로 재해석했다. 19세기에 태동 된 추상미술(abstract art)은 크게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와 칸딘스키의 자유추상으로 나눈다. 여기서 정해숙은 몬드리안의 영향으로 기하학적 작업을 하지만, 자연물을 매개로 그린다는 부분이 차별된 점이다. 몬드리안은 화면에 수직선과 수평선에 의한 직각 면의 절제만을 고집한 제한성이 있었지만 정해숙은 수직선과 수평선, 거기에 곡선과 사선까지 포함한 삼각, 사각, 원의 구상적 형태를 도입하여 총체적 입체감과 생동감을 표현했다.

▲ ▒ 제목:투영(생명나무)Ⅱ, 72.7x72.7cm, Oil on Canvas, 2017■정해숙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10회의 개인전과 220여 회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과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랑의교회 미술인선교회 명예회장이다.

정해숙은 종교성을 포함한 우연과 필연, 감성과 지성에 의한 또 다른 결과물을 창조하는 ‘융합 추상’이다. 결국 절대 기호에 의한 몬드리안의 순수 기하학 추상과는 다른 성향의 정해숙만의 ‘물성 융합 기하학 회화’라고 관찰된다.

작가는 반짝이는 작은 삼각 입자 덩어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이처럼 숨겨진 정신적 부분의 중요성을 간결한 상징과 기호로 묘사하는데 삼각 사각 원등의 기하학적인 기호를 매개로 신앙의 본질을 재현했다. 또한 하늘과 공간을 푸름으로 묘사하여 생존세계와 대비되는 천상세계 질서를 직시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 하늘 도성에 대한 그리움 또는 기대감의 표현이라 추측할 수 있다. 색채는 블루 톤으로 전체 공간을 설정하여 연속성과 반복성에 의한 영원성을 갈망한다.

화면은 직사각과 원형 형태로 구성한 나무 한그루가 중심 주제다. 언뜻 보기에 데칼코마니 같은 대칭적 구성은 어릴 적 동심을 연상시킨다. 짙푸름에서부터 점차 밝아지는 대지와 그 위를 뚫고 나온 나무 한 그루, 크고 작은 열매들, 촘촘히 채운 삼각 도형, 커튼을 열어 놓은 것 같은 하늘 공간, 한쪽 구석에 놓인 반쪽짜리 항아리 등 모두 기하학적 형태다. 짙푸른 대지로 은유된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꿈꾸는 의도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화폭의 나무는 인생여정을 의도하는데 영원한 나라를 꿈꾸며 살겠다는 의지를 초록으로 암시했다. 거기에 성령의 아홉 가지 선물을 추가하여 삶에 대한 진정성을 더 강조했고, 열린 하늘은 화해와 소통의 잠재의식적 표현으로 보인다. 또 날고 있는 새에서 작업의 원동력을 찾는 심미적 성향이 감지된다.

주의 깊게 살펴 볼 것은(작가의 의도나 생각 혹은 자신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을 경우) 한쪽 구석에 놓인 반쪽짜리 항아리다. 작가는 물 떠 온 하인의 순종적 믿음을 의도하지만 아직까지 온전하지 못한 자신의 연약과 갈등을 암시하며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겸손을 내포한다.

<투영(생명나무)II>는 스쳐가는 일상 속에서 깨알 같은 점 선 면을 그리며 화폭에 온 몸과 마음을 기대어 살아가는 작가적 고뇌의 산물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성령의 선물에 대해 진정성 있게 묵상할 즈음 바람결이 살포시 어깨를 토닥이며 지나간다. 평온한 가을, 마음만은 따스한 온기로 가득한 푸르고 청청한 십일월의 가을밤이 깊어만 간다.
<서양화가, 기독미술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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