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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기다림 속에 꽃을 피운다

기사승인 [2138호] 2018.01.25  23: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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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왕 목사의 아름다운 자연사진 이야기] (10)자연사진은 기다림이다-몬테네그로의 코토르해안

필자의 사진작업은 단체 여행이나 교회로부터 일 년에 두세 주간의 안식월을 얻어, 비교적 개발이나 오염이 적고 보존이 잘 된 지역을 우선적으로 선정하여 이루어졌다. 물론 시간도, 비용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항상 카메라를 두세대 준비한다. 동일한 장소에서 자연 풍경을 넓게 잡는 광각(廣角)과, 크게 잡는 망원(望遠) 사이에 해당하는 렌즈를 가지고 동시에 촬영하기 때문에 항상 사진 분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중 단체 여행 시에 가장 큰 애로는 일행 대부분이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경치를 스쳐 지나가는 반면, 필자는 동일한 장소에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요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늘 쫓기는 심정으로 사진을 찍게 되고, 일행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거운 장비를 들고 급히 걷거나 뛰어야만 한다. 버스가 출발할 때면 거의 맨 마지막으로 차에 오르게 된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구도를 잡고 빛을 조절해서 질 높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좋은 작품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오늘 사진은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 아드리아 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코트로(Kotor) 해안 풍경이다. 언뜻 보면 마치 드론을 날려서 찍은 사진처럼 생각되겠지만, 사실은 무거운 삼각대까지 준비하여 ‘St. Jhon Fortress’라는 이름 그대로 검은 바위산인 요새의 성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코트르 연안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슬람의 침공을 대비해 지었다는 돌 성벽과 요새는 경사가 급한 능선을 따라 튼튼하게 건설되어, 한 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다. 아름다운 항구는 붉은 기와집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멋지고 우아한 풍경은 하루 종일이라도 사진을 찍고 싶을 정도였다.

사진을 찍는 동안 부지런한 일행은 경치를 다 둘러보고 다시 내려가고 있는데, 필자는 삼각대를 거치하고 떠날 줄을 몰랐다. 눈에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이미 아름다운 자연 사진의 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풍경에서 마치 잠이 든 공주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적막감을 느꼈다.

미술에는 사물이 멈춰있는 상태를 그린 ‘정물화’ 장르가 있듯이, 사진에도 광고나 인물 사진처럼 부동자세로 촬영하는 작품들이 있다. 대개는 자연풍경을 담는 사진도 정물화와 같은 장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 사진에는 무엇인가 ‘생명력’과 ‘역동성’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더욱 아름다운 사진이 될 수 있다.

산성에 올라, 마치 활이나 총으로 적을 정조준 하듯이 산성 아래 펼쳐진 그림엽서 같은 연안을 카메라로 포착하면서 필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배가 입출항 할 때 그려지는 아름다운 파문이었다.

마침 멀리서 배 한척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선창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셔터를 눌러대면서 좀 더 큰 배가 파문을 일으키면서 입항하기를 기다렸다. 그 동안 내심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가 정해준 자유시간의 끝은 점차 임박해오고, 일행들은 이미 산성을 떠나 하산한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조바심 속에 기다리다가 결국 대어는 포기하고 장비를 챙겨 산성을 뛰다시피 내려왔다. 이런 경우 나보다 더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일행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제일 불편해 하는 아내이다. 아내는 나에게 너무 멀리, 너무 높이 오르지 말며, 적당히 찍고 제발 약속시간에 늦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게 되면 까맣게 잊은 채 촬영에 몰입하게 된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한 장이라도 더 아름다운 사진을 찍으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성에 차는 작품을 건지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숨이 턱에 닿도록 하산하여 일행이 기다리는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면서 아내의 얼굴을 살피게 된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운 자연 사진은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사진=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 원로)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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