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잉글랜드에서 제1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날 당시는 아메리카 신정정치라 불리던 청교도 제1세대들의 실험이 종말을 고하던 때였다. 이미 제1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기 28년 전인 1706년 코튼 메더는 당시 청교도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기독교가 부패하였음을 고백한다. 아! 죄 많은 국가여 이 부패한 자식들이여 그대의 손으로 한 짓들이여!”

당시 아메리카 식민지들의 세속적인 모습을 개탄한 사람은 메더 목사 한사람만이 아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태어나기 1년 전인 1702년 인크라트 메더는 청교도 사회의 초창기 영화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이든 그대들, 50년 전에 뉴잉글랜드가 어떠했는지 기억할 수 있는 그대들, 그대들은 그 교회들의 영광을 보았으며 그 영화 가운데 슬픈 타락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아! 찬란했던 시절이 이제는 희미해졌구나” 청교도주의의 불길과 열의가 미국 역사가 데이비드 르빈(David Levine)의 말처럼 대서양 이쪽과 저쪽에서 모두 소멸되어가던 시대가 1734년 제1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기 전의 뉴잉글랜드의 모습이었다.

한국 기독교의 장자임을 참칭하는 합동의 모습은 지난 날 60년대 통합측 이탈로 힘겨웠던 시절,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청빈과 경건 속에서 총신을 세우며 지나왔던 그 시절의 경건을 모두 잃어버린 기독교 황폐 시기를 맞고 있다. 기독교 탈진전문가인 크리스티나 매슬랙이 규명한 목회자 탈진의 세가지, 정서적 소진 비인격화 그리고 성취감의 결여가 매너리즘이라는 구덩이에 빠져 목회자들이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목양의 열정을 잃은 채 직업인들로 전락한 현실은 미스바에서 모여 금식했던 사무엘상 7장으로 돌아가야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목양에 대한 창의성과 독창성을 상실한 채 종교개혁이 그토록 반대했던 성과 속의 이분법에 근거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중세 카톨릭을 방불케 하는 목회자중심주의로 강화된 현실이 개혁되지 않는 한 한국교회의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칼빈은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에게 장로직을 허용하여 제2세기 초대교회를 모델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성경 말씀에 합당한 교회제도를 주창한 것이 장로교회의 모범이 되었다.

개혁되어야한다. 목회자들의 경우 권위주의 극복, 섬기는 종으로서 정체성 강화 등의 구체적 실천은 물론 평신도들의 만인제사장다운 삶, 즉 자신이 섬기는 영역에서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는 삶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기 위한 삶의 실천이 있을 때 기독교의 위기는 극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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