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포럼 프로그래머>

폴란드 어느 도시의 아파트촌. 무심한 듯 보이는 일상의 공간에 어린 파웰과 그의 아버지 크리지스토프, 그리고 고모 이레네가 살고 있다. 파웰은 컴퓨터 언어학자인 아버지 크리지스토프를 동경하고 흠모한다. 심지어 아버지가 강의하는 대학교에서 파웰은 버젓이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도 하고, 아버지와 함께 팀을 이루어 체스대회에 나갈 정도로 뛰어난 수재이기도 하다.
어느 날 파웰은 아파트 근처 연못가에 죽어있는 개를 목격한 후,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아버지에게 삶과 죽음에 관해 묻는다.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런 물음에 아버지 크리지스토프는 본인이 믿고 있고 현대과학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 아들에게 답한다. 특히나 영혼이나 신을 믿는 사람들은 단지 그렇게 믿는 것이 사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신을 믿는 고모 이레네는 다른 사람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일깨운다. 신이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파웰을 이레네는 꼭 껴안으며 네가 지금 느끼는 이 사랑에 곧 신이 계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운명의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덮쳐 오는지 알지는 못한다. 단 한 사람, 연못 옆에서 모닥불을 쬐며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만 빼고.

오는 4월 24일부터 열리는 제15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 가지 색 연작 시리즈 <블루>, <레드>, <화이트> 등을 연출한 폴란드의 세계적인 거장 크쥐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Dekalog)를 선보인다. 1988년 TV 단막극 형태로 만들어진 십계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십계명을 근거로 키에슬로프스키 본인과 그의 변호사 크쥐스토프 피시비치가 공동으로 각본을 맡아 10편의 단막극으로 제작한 영화다.

당시 폴란드의 시대적 상황은 1981년 계엄령이 선포되고 많은 지식인들이 ‘국가의 원수’라는 죄목으로 처형되던 때이다. 이때 키에슬로프스키는 지금 보다 좋지 않은 상황들이 올 거라는 직감을 하고,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는 표정을 보고선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여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깊은 회의와 의문을 갖던 중 그의 변호사 피시비치와 함께 답을 십계명에서 찾기로 한다. 본격적으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각본을 완성하고 데칼로그 10부작을 완성했다. 올해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는 1편 <어느 운명에 관한 이야기>와 2편 <어느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묶어서 관객을 맞이한다. 특히 이 영화 <십계>를 텍스트로, 신의 존재에 대해 신학적 철학적으로 명쾌하게 풀어낸 <데칼로그>의 저자 김용규 선생과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이 강론을 펼친다. 오직 사랑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아빠 크리지스토프는 사랑스러운 아들 파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멋진 스케이트를 사준다. 파웰은 다음 날 스케이트를 탈 생각에 신이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빠는 다음 날 파웰이 마을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얼음이 단단한지 컴퓨터로 계산한다. 답은 ‘그렇다’ 이다. 그날 저녁 크리쥐스토프는 직접 밖으로 나가 연못 얼음에 발을 굴러 본다. 그가 숭배하는 합리적 이성이라는 신은 컴퓨터로 답을 내어 놓았지만, 몸의 실존은 불안하다. 그래서 직접 얼음을 두드려본다. 이 모습을 연못에서 모닥불을 쬐면서 젊은 남자가 지켜보고 있다.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직접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타임지는 이 작품을 1980년대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십계>야말로 자신의 일생에서 걸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영화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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