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호 목사(동산교회)

▲ 남서호 목사(동산교회)

무신론자인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이성의 시대>란 책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저술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기독교를 조롱했다. 그는 책 서두에 “이 책은 장차 기독교를 박멸하게 되리라”고 예언하면서 “100년 안에 성경책은 다 없어지고 박물관이니 고서적을 파는 책방 구석에서 먼지가 앉은 성경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성의 시대>는 1784년 런던에서 출판되었는데 토마스 페인은 그 책 때문에 비참하고 고독한 신세가 되었다. 그는 후회하면서 “이성의 시대가 쓰여지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 책을 다 회수할 수 있다면 세상에 있는 것 전부를 줄 터인데…”라고 말했다.

무신론자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불가지론자란 하나님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한다(또는 하나님의 존재여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자들은 모두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실천 사이에는 거대한 간격이 있는 것이 드러났다. 바꾸어 말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활 속에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안 믿는 것과는 무관하게 우리들 대다수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들은 실제적인 무신론자들인 셈이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우리는 그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며, 그 분에 관하여 그리고 그 분과 더불어 대화할 것이며, 그 분을 경배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참석률은 쇠퇴해 가는 반면 주일이면 각종 여가와 오락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늘어간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가치관을 반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쟁을 통해 그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의 고귀함을 깎아내렸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의 초점을 하늘을 향해야 할 것이다. 무덤 뒤에 영원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우리는 현세 안에서 삶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모든 향락, 오락거리, 돈, 즐거움을 붙잡는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이며 쾌락 지향적이다. 심지어 목회자들도 점점 그 같은 올무에 빠져들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총회도 총신도 교회도 하나님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의 사랑과 정의에 관한 말씀을 널리 선포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생활 속에 믿는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 우리의 아웃, 자녀, 친척, 친구들이 우리 안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정말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생명력 있게 자라가는 관계를 갖고자 하신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를 위해 살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작가 자신의 전 생애 동안 그를 괴롭히던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문제 삼은 작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반은 훌륭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신은 인생의 문제와 무관하고 신의 실재도 인간의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입증하려 한다.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세계(the world as it is)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입장권조차 반환하고자 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궁극적이 아닌 것은 믿을 필요가 없다는 이반의 사상은 이성의 종교(religion of reason)이며 이신론(理神論)에 불과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작품에서 제기하는 무신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신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에 대한 문제는 그것이 신의 존재의 물음이든 아니든 간에 불신앙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신앙인에 의해서만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반의 무신론은 니체나 막스 또는 그 밖의 실존론적 무신론과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빚어지는 현실 부조리와 악을 제거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주의적 무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신은 죽었다고 외치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보다는 신의 이 세상에서의 활동을 부인하는 실천적인 무신론이다. 이스라엘 사람 중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갖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을 믿지 않고 그의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무신론자이다.

오늘날은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의 영혼이 죽은 것이며 따라서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간다운 삶의 회복에 우선적 과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총회와 총신은 조용히 그 분에게 신성한 자리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 그리고 정중히 모시고 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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