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개혁주의 모델 박윤선 목사 ② <성경주석> 완간과 신학

35년 연구 결실, 설교자료 부족했던 목회자에 큰 선물 … 성경에 대한 경외심 깊이 담아

<기독신보>(현 기독신문) 1979년 10월 13일자에는 ‘성경주석완간 감사예배-박윤선 박사의 필생의 명예’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성경주석완간 감사예배는 그해 10월 9일 오후 2시 총신대학교 강당에서 거행했다.

총신대학교 학장 김희보 박사의 사회로 드린 예배에서 당시 미국에 거주했던 한부선 목사(Bruce F. Hunt)가 내한해서 ‘국가위기의 학사’(느 8장)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교단의 주요 인사들과 학생들이 참석해서 드린 감사예배는 박윤선 목사 개인 뿐만 아니라 교단의 자랑이었다.

한 사람의 신학자가 성경 66권 전권을 완간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기에 박윤선 목사하면 <성경주석>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밖에 없다. 1949년 <요한계시록 주석>을 발행한 이래 1979년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주석>까지 박윤선 목사는 구약 12권, 신약 8권으로 <성경주석>이란 대업을 완성했다.

박 목사는 신학자였지만 목회와 교수사역을 병행했다. 매주 여러편의 설교를 했고 수많은 글들을 발표하고 저술을 했다. 더구나 박 목사가 활동했던 시기는 일제의 점령, 남북분단,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이 일어났던 실로 격동기였다. 사역하던 신학교들에서 쫓겨나서 집필의 흐름이 끊어졌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목사는 <성경주석>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끝내 정진했다.

박윤선 목사는 왜 <성경주석>에 심혈을 기울였을까? 박윤선 목사는 1979년 4월 7일자 <기독신보>와 인터뷰에서 ‘성경주석에 뜻을 두게 된 동기’에 대해 “성경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었다. 성경에 대해서 깨닫는 것 자체를 기쁨으로 삼았고 그 기쁨을 널리 나누고 싶었다는 말이다. 박윤선 목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보면 기도의 모습에 대해서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성경을 몇 번이나 어떤 식으로 읽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박윤선 <성경주석>의 내용이나 그가 발표한 설교 등으로 미뤄 생각할 때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 자체를 큰 기쁨으로 삼았던 것은 분명하다.

박윤선 목사가 <성경주석>에 힘쓴 또다른 이유는 설교를 통한 강단회복을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성경주석>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다른 주석에 비해 지나치게 각 권에 대한 표제 부분이 짧다는 것이다. 보통 주석의 저자들은 본문 해설에 들어가기 전에 성경의 저자, 목적, 배경 등 서론 부분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그러나 박윤선 목사의 <성경주석>은 창세기 편 서론이 1쪽, 출애굽기 서론은 단 7줄 밖에 되지 않는다. 성경의 배경적 이해가 적은 것은 박윤선 <성경주석>의 약점으로 거론된다.

▲ 박윤선 목사는 1944년 만주에서 <요한계시록 주석> 저술을 시작한 이래, 1979년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주석> 출간까지 35년간 <성경주석> 집필에 매진했다. 박 목사의 뛰어난 능력과 성경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있었기에 이뤄낸 위대한 업적이었다. 사진은 성경주석완간 감사예배 후 이화주 사모(오른쪽)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박윤선 목사 모습(사진제공=도서출판 영음사).

<박윤선의 개혁신학 연구>의 저자 서영일 박사는 “박윤선 주석 전체에 대한 좀 더 심각한 비판은 그가 비평적인 문제들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라면서 “성경 각권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주제나 체계 등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박윤선 목사는 <성경주석>을 통해서 원어의 의미나 문법적 의미 등은 소상히 다뤘지만 성경 각권 자체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다. 이런 현상은 박윤선 목사가 인터뷰를 통해서 성경을 더 알고 싶었고 깨달은 바를 나누고 싶어서 성경주석을 시작했다는 고백과 일맥 상통한다. 한편 주석을 빨리 완성해서 목회자들에게 선사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였고 본문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점도 작용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런 방향에서 집필됐기에 <성경주석>의 두 번째 특징인 설교에 중점을 둔 간행물이라는 장점이 더욱 두드러졌다. 박윤선 목사는 생전에 “성경주석 작업의 목적은 한국교회 강단이 메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윤선 박사 생전에 많은 목회자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었으나 새벽기도회를 포함해서 매주 10편 이상의 설교를 해야 했다.

박 목사는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박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책들을 보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비판하는 이야기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박 목사는 당대 설교자들의 수준을 폄하하고 평가하는 대신 그들에게 설교자료를 제공했다. 이 때문에 그의 주석에는 989개의 설교요약이 있으며 설교요약의 앞에는 500여 개의 설교재료가 들어있다. 또한 설교에 쓰일 수 있는 예화들이 풍성하다. <성경주석>은 다소간의 약점이 분명 존재했지만 당시 가장 최신의 자료를 담은 신학 서적이었으며 박 목사의 강점인 언어분석을 통해 정확한 본문해석을 가능하게 했던 최고의 연구물이었다. 한편 <성경주석>은 도서출판 영음사에 의해 2016년 단권(<정암 박윤선 주석성경>)으로 발간돼 화제를 모았다.

박윤선 목사는 한국교회에 개혁주의 신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박 목사는 남들보다 앞서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잠시지만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칼빈주의신학을 체득했다. 자료에 따르면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박윤선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재학했던 단 한 사람의 한국인이었다. 박윤선 목사는 귀국 후 헨리 미터의 <칼빈주의>와 로레인 뵈트너의 <칼빈주의 예정론>(박형룡 박사 역으로 출판)을 번역했다. 박 목사는 <성경주석> 서문에서 자신은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체계를 바탕으로 주석을 쓰고 있음을 밝혔다. <요한계시록 주석> 머리말에서 박윤선 목사는 “해석에는 칼빈주의 원리가 성경적인 줄 알고, 일률적으로 주로 칼빈주의 주석들에게서 인용하였다”고 기록했다.

박윤선 목사가 오늘의 한국교회 설교와 신학체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성경이 너무 좋아서 평생 성경주석 집필에 집중했으며 그 일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은 자세는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그의 신학과 설교관에 대해 이견이 존재할 수 있지만 강단이 살아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지론을 온몸으로 펼치면서 살았던 그를 그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학행위, 선지자적 책임 있다”

박윤선 목사의 과학관

박윤선 목사는 ‘하나님의 영역주권’이라는 칼빈주의사상이 문화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글을 통해 생각을 전했다. 정성구 목사(한국칼빈주의연구원 원장)는 <나의 스승, 박윤선 박사님>(근간)에서 <파숫군> 1953년 8월호에 실린 ‘칼빈주의에서 본 신자와 문화건설’이라는 글을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박 목사의 생각은 상당히 개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2장 19절에서 아담이 모든 이름을 지은 것은 과학행위였다. 과학은 문화건설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사명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신자들 중에서 과학을 무시하는 폐단이 많이 있다. 기독교는 과학을 초월하나 무시하지 않고 도리에 과학 행위에 있어서 누구보다 더 선봉적인 걸음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이 성경의 말씀을 알고 거기에 명한 과학의 사명을 깨달은 이유이다. 기독교인은 만물의 법칙이 있는 줄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연구하면 깨달을 것이 있을 줄 알기 때문에 과학 행위를 누구보다 더 솔선하여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중에는 창세기 4장에 있는대로, 악인이 가인의 자손들의 문화와 발달한 것을 보고(창 4:20~22) 생각하기를, 문화의 발달은 악인들이 할 일이고 신자로서는 거기에 힘쓸 필요가 없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편견이다. 가인의 자손들이 그 당시의 문화를 발달시킨 것은 죄악의 행동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이 세상 분깃(몫)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불신자들이 가질 수 있는 문화건설도 결국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그것이 인간의 죄악의 산물과 혼합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좋은 것이다.

과학행위에 대한 기독신자의 책임은 누구보다도 중대한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 신자는 과학 행위와 문화 건설에 있어서 선지자적 책임까지 하여야 되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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