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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끊이지 않는 이단들의 종말론 유혹

기사승인 [2163호] 2018.08.10  17: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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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용식 목사(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회장)

▲ 진용식 목사(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회장)

최근 말세의 대기근을 피해야 한다며 신도 400여 명을 피지로 집단이주 시킨 은혜로교회 신옥주 씨가 한국 교회는 물론 사회에 큰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신 씨는 2016년 예장합동 제101회 총회에서 집회참여금지를 규정한 인물이다.

또한 이단인 돌나라 한농복구회(구 엘리야복음선교원)는 한국 전쟁설을 퍼뜨리며 신도 1000여 명을 국외로 이주시켰다. 언론에 ‘D교회’로 보도가 됐지만, 이 단체는 교회가 아니라 교주 박명호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다. 아직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남미의 안데스산맥 아래에 천년왕국이 있다며 집단이주 시킨 이단도 있다. 

인체에 삽입하는 ‘베리칩’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표 666’이라고 주장한 이단들도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의료보험법을 시행하며 미국인들에게 강제로 삽입한다는 유언비어가 2014년 당시에 확산되자, 이 말을 믿고 한국으로 도망간 재미교포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교포들이 한국에 왔더니 홍혜선 씨가 2014년 12월에 “한국에 전쟁난다”고 예언을 했다. 미국에 있자니 베리칩이 무섭고, 한국에 오니 전쟁이 터진단다. 또 이 말에 속아 태국으로 도피한 신자들이 있다. 

종말론은 이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말씀이다. 종말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개인의 종말과 우주의 종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축복이고 감사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종말은 파괴와 공포가 아니라 ‘혼인잔치’로 묘사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종말은 신랑 신부의 혼인잔치가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의 때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그 이유는 첫째, 요한계시록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이 예수님의 재림 곧 종말은 ‘혼인잔치’이다. 우리는 신부가 되고 예수님께서 신랑이 되는 날이다. 이 날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은혜로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이단들은 계시록을 해석해 줄 특별한 사명자를 만나야 종말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성경에 이런 가르침은 없다!

둘째,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다. 교회에 오래 다닌 신자, 열심 있는 성도들이 오히려 이단에 잘 미혹된다.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성도를 ‘밥’이라고 부른다. 미혹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교회에서 구원론을 철저히 교육시키고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 칼빈은 “자기가 구원 받은 것을 굳게 믿고 의지하면서 마귀와 사망을 자신 있게 굴복 시키는 사람이 아니면 신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성도들이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단 예방이다.

셋째, 이 세상에 대한 이원론적 관점을 버리지 못해서다.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학업 직업 사업 등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이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인의 모습일까? 성경의 인물들은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 파루시아(parousia, 재림을 의미하는 헬라어)와 마라나타(Maranatha, 현재적으로 ‘주님께서 오신다’, 미래적으로 ‘주여 어서 오소서’를 의미하는 아람어)의 신앙을 갖고 있었다. 루디아, 아리마대 사람 요셉, 아굴라, 브리스길라 등은 이 땅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제자의 삶을 살았다.

우리는 마르바던이 종말에 대해 말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저서 <약할 때 기뻐하라>(복있는사람)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종말에 대한 징조는 오직 한 가지, 모두 무릎을 꿇게 만들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영광스런 모습뿐이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종말을 추측하는 사람들을 좇지 말 것을 예수님은 경고하신다(눅 17:23, 21:8).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가난한 자를 돌보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나라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며, 이 땅의 현실 속에 그리스도의 통치가 임하도록 힘써야 한다(62쪽).”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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