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판술 목사(건강한교회, 남광주노회장)

▲ 정판술 목사(건강한교회, 남광주노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는 1979년 제64회 총회에서 분열의 아픔을 겪은 이래 2005년 제90회 총회에서 다시 교단이 하나가 되었다. 벌써 ‘합동총회’가 된 지 13년이 흘렀다. 그리고 제103회 총회를 한 달 가량 앞두고 있다. 그런데 복잡한 총회에 난 데 없이 구 개혁측 총대횟수 문제가 불거져 당사자들은 물론 총회 안팎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당시 양 교단의 ‘합동총회’는 양 총회의 총회장과 서기 명의로 동일 장소에서 소집하는 것이었고, 양 총회의 역사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참으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따라서 합동된 총회는 합동측과 개혁측, 개혁측과 합동측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합동총회’였다는 것을 만인이 알고 있다.

현재 총회 임원선거를 앞두고 봉착한 구 개혁측 출신 부서기 후보자의 총대 횟수 산정의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복잡한 정치상황에 맞물려 몇 겹으로 꼬이더니 이제는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자칫 합동총회에 큰 오점과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당사자는 “나 혼자 조용히 하면 총회가 평안하겠다는 심정으로 선관위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이러한 선관위의 결정은 구 개혁측 형제들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고, 심지어 구 합동측 형제들도 안타까워 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합동총회가 과거 개혁총회를 점령하지 않은 바에야, 당연히 양 총회가 합동을 했다면 그 과거 역사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상식이다.
연유야 어찌 됐든 총대로 파송된 횟수는 그대로 인정하여 피선거권을 주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은 모든 조직이 갖는 상식이자, 기본적인 권리인데도 무시되고 있다. 선관위가 아무리 많은 이유를 들어 개혁측의 총대 횟수는 인정해 줄 수 없다고 변론해도 그것은 역사의식도, 정의 관념도 없는 몰염치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총회 선거가 치열한 것은 안다. 그러다보니 후보자의 인격을 보호하고, 목사 혹은 장로로서의 권위를 갖추도록 하는 심사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또한 선관위원도 총대인데 그들 입장에서도 각각 선호하는 후보자가 있을 것도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공정해야 한다. 특히 우리 총회처럼 위원 각자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조직에서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결정해야 한다.

선관위의 결정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 들린다. 그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13년 전 개혁총회 간판을 내리고, 총회를 합동하기로 결정한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

교회의 부흥이 멈추고, 분열된 총회로서는 한국교회를 이끌어나갈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우리는 교단 합동에 동의하지 않았는가. 합동 이후 백년 묵은 총회 정치의 해악을 몸소 맛보면서도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자유주의를 배제하고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말씀중심의 개혁신학 보수에 동조하며 위안을 삼지 않았는가.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하나님의 교회와 그의 백성을 삼키기 위해 종교다원주의와 세속주의와 자유주의로 무너뜨리려고 하는 이때에 우리는 깨어서 교회와 그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사명은 지금 일부 정치 몰이배들의 역사의식 없는 결정에 분노하며 극단적인 행동을 도모하자는 것이 아니다. 쇠락해가는 한국교회의 부흥과 여전히 시끄러운 총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기도하며 마음을 모아야 한다. 아직도 우리 합동총회 안에는 선한 양심으로 목회하며, 상대를 깊이 배려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수많은 동료들이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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