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호 목사(구미사랑의교회)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고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 안재호 목사(구미사랑의교회)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눅 19:41-42)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눈물을 두 번 흘리셨습니다. 한번은 나사로의 무덤 앞이었고, 또 한 번은 본문에서 예루살렘 멸망을 앞두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눈물이 없는 사람, 눈물이 없는 공동체, 눈물이 없는 세대를 향하여 한탄하셨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 11:17).

자신이 죄악 속에 빠져 멸망의 자리에 이를 수밖에 없어도 눈물이 없습니다. 사명을 망각하고 세속 문화와 정욕으로 인한 타락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도 애통해 하지 않습니다. 교회와 교단이 세속화 되어 타락의 늪에 빠져가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치며 애통해 하며 울지 않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어도 ‘될 대로 되겠지’ 하며 울며 부르짖지 않습니다. 느헤미야의 심정을 가지고 주님께 눈물을 흘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나라, 한국교회, 교단, 교회 등 모두가 위기에 놓여 있는 이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지금은 내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할 때 여인들이 뒤를 따르며 울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흘려야 할 눈물은 바로 내 영혼의 상태를 살피고 흘리는 눈물이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웃시아가 죽던 해 성전에 들어가서 환상 가운데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아파하고 또 아파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장담과 다짐이 무너지는 순간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고 싶어도 행할 능력이 없고 행하는 것마다 죄뿐인 자신을 발견하고는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타락의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애통해 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울어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고 새로워지면 가정, 교회, 교단, 국가가 변화됩니다. 나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나를 살리고, 성도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성도를 살리고, 교회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교회를 살리고, 노회와 총회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노회와 총회를 살립니다. 이 모든 것을 살리는 힘은 눈물에서 시작이 됩니다. 눈물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꿉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고, 막힌 환경을 뻥 뚫린 환경으로 바꿉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내 자신입니까? 아니면 내 목회입니까? 아니면 우리 교단입니까?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가져와서 하나님께 내려놓고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한국교회와 우리 교단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땅에 밟힌다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밖에 버려져 땅에 무참히도 밟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중소형교회는 또 그 나름대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다.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고 깨끗해야 할 윤리 도덕, 그리고 성적 정결함이 한국교회 안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단이라 할 수 있는 우리 교단은 교단 신학교 문제로 위상과 권위가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타교단에서는 대형교회 리더십 이양문제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으므로 교회의 권위를 실추시켰습니다. 기타 여러 문제들로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갑니다. 전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한국교회의 앞날을 매우 어둡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사람을 탓하고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므이의 입을 통하여 다윗을 책망했듯이 많은 기관, 많은 단체, 많은 매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어도 깨닫거나 돌이키지 않고 소귀에 경 읽기처럼 자기들의 길만을 위해 유유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각 교단마다 총회를 엽니다. 우리 교단도 총회를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항간에 들려오는 부정적인 잡음에는 총회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들 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정말 교단과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교단 총회는 생산적인 총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맡겨 주신 사명들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도록 좋은 정책을 수립하여 결정을 하고 그것이 제대로 시행이 되어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여러분들의 눈에 우리나라의 아픔과 상처가 보이십니까? 죄와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어두운 사회와 타락한 문화가 보이십니까? 민족의 아픔과 위기가 보이십니까? 참으로 오늘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애통이 필요로 했던 때가 또 있었던가 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매우 어려운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정치는 더욱 혼란합니다. 경제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교계는 분열과 이단 문제로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나라 밖으로는 주변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감춘 속셈을 점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뾰족한 묘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만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라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나라를 위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기도할 때입니다. 더욱이 교회가 뭉쳐서 애통할 때이며, 주의 종들의 뜨겁고 간절한 애통의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 나라를 구하는 길은 그리스도인들의 눈물뿐 입니다. 나라가 썩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의인 열 사람의 애통하는 눈물이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레미야는 죄로 사무친 백성을 보면서 울었고,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울었고, 멸망될 도성을 보고 울고 또 울어서 눈물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에게는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동족의 구원을 위한 애통입니다. 느혜미야는 조국이 큰 어려움에 빠져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찢어지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울며 또 울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라의 운명이 멸망으로 기울어져 가는 민족의 쇠운을 보고 가슴 치며 울었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죄인이올시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사랑하여 주셨는데 이 민족을 위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올시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로 하나님의 제단이 더렵혀져 가는 모습을 보고 일사각오라는 제목의 설교를 울면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동방 내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 세대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구나.”

민족을 구원하고자 피를 흘리며 울던 순교자들의 그 눈물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엎드리고 눈물을 흘립시다.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우리 모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어렵고 혼란한 한국교회와 교단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나라와 민족을 위한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게 눈물을 흘리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눈물을 씻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 25:8).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왕하 20:5). 우리 모두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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