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교회는 계시, 구속사,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는 기독교적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리는 또 다시 종교개혁기념 주일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교회의 본질적 희망으로 삼아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믿고 소망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사랑과 공의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서 성취해가는 성별된 공동체 아닌가. 따라서 교회는 종말론적 비전을 가리고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현재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사도적 공교회의 정체성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 에너지인 ‘루하흐 야웨’ 곧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사도들이 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교회가 세속 문화화 되어버렸고 세속 문화가 교회화 되어버렸다. 목회자들이 물질 앞에서 맥을 못추는 한국 기독교의 현상은 교회가 복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병리 현상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 땅 위에 산업화와 함께 출현한 물질 만능주의는 신자유주의화 되면서 교회를 점령한지 오래이다. 설교와 예전과 교리라는 목회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교회의 본질적 기능이다. 그런데 이 본질적 기능을 상실하면서 대체된 것이 물질주의이다. 미래 지향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으로는 이사야의 말씀이 생각난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한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사 65:17~18) 구약의 종말론적 비전은 새 창조로 끝맺음한다. 이렇게 됨은 신약이 새 창조로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미래지향적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 총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뒤흔드는 물질주의는 기독교적 근원으로부터 단절과 세속의 가치들이다. 총신대 총장의 구속은 물론이고 지금도 103회 총회 이후 교단 내에 떠도는 루머의 배후에는 금품수수라는 괴물이 자리하고 있지 아니한가.

제103회 총회가 지향하는 ‘변화하라’는 명제는 총회의 리더들이 꼭 명심해야 할 과제임을 잊지 말자. 지금 우리 총회는 직선제가 도입되고 첫 번째 선거인데도 돈 선거에 대한 개탄의 소리가 높아 다시 제비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우리 모두 세속화와 물질주의라는 사슬에서 벗어나 교회의 본질적 기능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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