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요즘 TV프로그램들을 보면 감동이 없다. 너무나 인위적이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이다. 아이들이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가정에서는 TV를 거실에서 안방으로 옮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TV를 없앤 가정들도 종종 보인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배울 것도 감동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필자의 마음에 감동과 생기를 주는 TV프로그램을 만났다. 씨름 천하장사 출신의 강호동씨와 ‘양심 냉장고’로 유명한 개그맨 이경규씨가 진행하는 <한끼줍쇼> 라는 탐방 프로그램이다.

▲ 모르는 사람의 집에 예고없이 찾아가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TV 프로그램 <한끼줍쇼>의 홍보 화면.

프로그램의 내용은 이렇다.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혼밥’이 트렌드가 되고 있는 요즘시대에 식구끼리 집에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드문 일이 되었다. 너무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판을 치고 있는 시대, 그것도 저녁식사 시간에 남의 집을 예고 없이 방문하여 함께 식사하고 삶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우리 상도동엘 왔다. 진행자인 강호동씨와 이경규씨, 그리고 이종 격투기선수 추성훈씨과 가수 광희 형제가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남의 집 초인종을 불시에 누른다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초인종을 눌렀다고 문까지 열어준다는 보장도 없고, 갑자기 온 불청객에게 집안의 내탕고를 열어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품격이 살아있는 상도동엘 왔지 않는가? 단번에 성공할 줄 알았고 그렇게 되길 바랐다.

그런데 실상은 번번이 실패했다. 보는 필자가 답답했다. ‘우리 집에 오시지. 그러면 단번에 열어주고 뛰어나가 맞이할 텐데….’ 강호동씨와 추성훈씨가 한 팀을 이뤘는데 계속된 실패에 지쳐갔다. 결국 추성훈씨는 자신을 모르는 집 주인에게 “저~ 사랑이 아빠입니다”라고 자녀의 이름을 파는(?) 마지막 필살기까지 보이며 기필코 한 끼를 해결하겠다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간절하게 구하니까 아기를 키우는 어느 집 문이 열렸다. 우리 집에 온 것도 아닌데 문이 열리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직 밥을 먹고 있지 않았던 딸 덕분에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훈훈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많은 감동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심방’이지 않은가? 두 진행자가 ‘교역자’가 되고, 나누는 이이야기가 ‘설교’이며 ‘상담’이고, 대화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다과 대접’ 아닌가? 초인종을 눌렀을 때 척척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한끼줍쇼>는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문을 열게 만들고, 함께 식사하며 좋은 교제를 나눈다.

상도제일교회는 지금 흔히 말하는 대심방 중이다. 성도들의 각 가정을 다니며 말씀으로 권면하는 기간이다. 심방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졌음을 느낀다. 요즘 맞벌이를 하느라 심방이 어려워졌고, 심방을 안 받겠다는 가정도 늘었고, 심지어 심방을 교회에서 받겠다고 하시는 성도들도 있다. 어떤 교회는 심방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도들이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서로 합력에서 심방을 없애면 진정으로 누가 제일 기뻐하겠는가? 성도들일까, 교역자들일까? 아니면 공중 권세 잡은 존재일까?

<한끼줍쇼>에서 제일 감동의 장면은 마지막에 나오는 사진 찍는 시간이다. 함께 식사한 식구들을 중간으로 모시고 진행자와 초대 손님은 숟가락으로 큰 하트모양을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방송사측에서 그 사진을 확대해서 한끼를 대접해준 가정에 선물로 보내며 <한끼줍쇼> 는 끝난다. 방송이 마친 후에도 사진을 볼 때 마다 연예인들이 자기 집에 왔음을 기억할 것이고, 그 가정에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얼마나 자랑하겠는가? 감동은 두고두고 지속될 것이다.

수년전부터 필자는 대심방을 하면 마지막에 반드시 사진을 찍는다. 올해는 손하트 사진이 심방 콘셉트 사진이다. 그리고 사진을 반드시 두 장 뽑아 한 장은 심방 받은 가정에 보내고, 한 장은 교회당 입구에 모든 성도들이 볼 수 있도록 걸어놓는다. 세상의 감동은 혼자 간직해도 된다. 그러나 은혜의 감동은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그 감동이 감사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런 감사공동체가 바로 교회공동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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