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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위기에서 희망을 노래하자

기사승인 [2182호] 2019.01.07  09: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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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근 목사(남부전원교회)

▲ 박춘근 목사(남부전원교회)

새해를 맞이했다. 출발점에서 ‘새해에는 과연 어떨 것인가?’라는 미래를 먼저 생각한다. 마치 노예 생활을 마치고 자유를 향한 이스라엘의 심정과 같다. 출애굽을 떠올리게 할 만큼 흥분과 기대 속에서 시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1월은 라틴어 ‘야누리우스’에서 유래한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의 두 얼굴과 같다. 미래를 바라보게도 하지만 반대로 과거를 뒤돌아보는 분수령의 시간이기도 하다. 1월의 분수령에서 2019년의 위기와 희망을 생각해 보자.

먼저 기대와 달리 우리 한국 교회와 목회현장은 2019년에도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미래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짙은 안개 속에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도 예단이나 전망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외적으로는 국가의 저성장과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초고령화 시대를 맞고 있다. 또한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와 인구절벽에서 오는 현실을 겪고 있다. 그리고 세계는 기독교의 사상과는 먼 포스트모던 시대를 통한 초고속 변화와 4차 산업시대에 들어와 있다.

내적으로 우리 교계를 들여다보자. 지도자의 각종 스캔들, 교파분열과 교권다툼, 총신문제, 대형교회의 대물림 등으로 사회적 공신력에서 지도력과 영향력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목회적 토양은 그야말로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상황이다. 당면한 위기를 특별히 지적하지 않아도 일선의 목회자들은 느낌만으로도 위기를 대부분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다방면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위기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본질에 들어가 보면 성인병에 나타나는 현상처럼 물질주의, 성장주의, 개교회주의, 목회자 윤리문제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열거한 현상은 위기 원인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지도자들의 태도이다. 지도자의 ‘도덕적 해이’와 ‘인식의 불감증’이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교회에 위기는 대부분 외부에서 가해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기감을 느끼는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교세 감소를 경제수준의 상승과 민주화로 인한 교인들의 안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교회를 향한 불신자의 조롱과 비아냥은 교회가 너무 커져서 질투와 두려움이 가져온 일이며, 사회를 위해 숨은 봉사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의 결과는 아직 위기라고 할 수준은 아니라고 말을 한다. 그렇다. 보기에 따라 해석은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지도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위기인식에 문제가 존재한다. 그것은 통계가 입증하고 있다.

최근 한 리서치 회사의 자료에 의하면 국민 22.1%가 기독교인이지만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4%에 불과하고, 반대는 44.6%가 되었다. 심지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7년 3월에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도자를 신뢰하는가?’ 질문에 불신한다가 50.2%, 평신도를 불신한다가 48.8%이다. 교인보다 지도자를 더 불신하는 것이 1.4% 더 높게 나타난 수치가 이를 방증한다 하겠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2017년 5월, 성도 1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기독교인의 비호감 이유 중 57.8%가 삶과 신앙의 불일치를 꼽았고, 일부 지도자의 타락도 41.1%에 달했다.

따라서 교회의 위기는 이론적인 것보다 훨씬 무겁게 여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도자에 대한 불신은 곧 교회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정신개혁의 주체인 교회가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라는 지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시대적 상황과 영혼의 고통에 가장 민감해야 할 사람들이 지도자이다. 그런데 통증 불감증에 걸린 사람이 되었다면 분명히 위기이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교회가 쇠퇴할 때 나타나는 징크스를 정리해 봤다. 첫번 째, 예배보다 회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두 번째, 교회에 대한 관심보다 교회가 세운 연합기관들에 더 관심을 집중한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상징화하고 가치를 축소하는 것이다. 이것이 징크스요, 쇠퇴의 모습이라 했는데 우리의 지도자들의 상태가 이러한 위기에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새해 벽두에 이러한 진단과 성찰을 가져봐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위기를 넘어 희망을 노래해 보자. 이런 시대 상황과 내부의 현상은 새해를 맞은 우리 모두에게 장밋빛 미래보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보이는 두려움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희망을 노래하는 목회적 태도와 열정으로 다시 꿈을 가지고 시작하자. 우리가 처한 어두움이 클수록 진리의 작은 빛줄기는 더 밝게 빛난다는 점을 기억하자. 깊은 성찰은 포기가 아닌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즉 ‘위기는 또 다른 기회다’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위로부터 오는 소망을 붙잡고 기대 속에 달려가야 할 것이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위기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는 희망을 노래할 수 없다. 대처를 잘해야 되기 때문이다. 현실의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자명하다. 위기를 의식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뻔한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은 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나단 선지자가 불의한 부자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부자에 대해서 화를 내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화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 했을 때 다윗은 철저하게 회개 하였다.

우리도 희망을 노래하면서 이 한 해를 회개기도로 시작해 보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간섭이 위기를 극복하게 하실 것이다. 교회가 시대에 영향을 끼치려면 세 가지의 지향점이 있어야만 한다. 위를 지향하는 상향성과 자기 안을 살피고 돌아보는 내향성과 밖을 내다보며 가야할 외향성이 그것이다. 위를 지향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본질이요, 목표요,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영과 진리로 바른 예배와 말씀의 바른 전달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안으로 말씀의 성찰과 격려와 축복과 훈계로 힘을 집결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그 힘을 가지고 밖으로 전도와 돌봄과 선교를 통해 섬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해를 선물로 하나님께 받았다. 현상적 위기에서 깊은 통찰과 함께 회복의 한 해가 되도록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여전히 세상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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