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이종찬 주필 이임감사예배 드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기독신문> 주필 이종찬 목사 이임감사예배가 1월 16일 총회회관에서 진행됐다.

2014년 4월 <기독신문> 주필로 부임한 이종찬 목사는 2018년 12월까지 4년 9개월 동안 정론집필을 위해 헌신해 왔다. 특히 기독신문사 폐간과 구조조정 등 정치적 풍파 속에서도 교단지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반면 기독신문사의 발전과 화합에 앞장선 리더이기도 했다.

이종찬 목사는 <기독신문> 사설과 ‘백향목’ 칼럼을 통해 교단의 정체성을 지켜왔으며, 총회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는 또 <기독신문>을 통해 개혁신앙을 보수하고, 교회의 단결, 성도의 교제를 위해 헌신했다.

기독신문사 이사회 서기 김상현 목사 사회로 드린 이임감사예배는 편집국장 강석근 장로 기도, 증경총회장 안명환 목사 설교 및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그대로 행하니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한 안명환 목사는 “인본주의가 주도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신본주의 신앙을 붙들어야 한다”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총회와 기독신문사가 되라”고 권면했다. 이어 “개혁주의 신앙을 고수해온 이종찬 목사는 목회현장으로 돌아가서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목회자가 되라”고 말했다.

5년 여 동안 주필로 섬겨온 이종찬 목사의 공로를 감사하기 위해 기독신문사 사장 이순우 장로가 감사패를 증정했으며, 안디옥교회 김동관 목사가 격려사를 전했다.

이종찬 목사는 시인이자 부흥사 등의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만 35년 동안 권선제일교회를 한결 같이 섬기고 있는 목회자다. 이종찬 목사는 “목양일념의 사명에 충성하겠다”고 말했다.

이종찬 목사는 이어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교단지인 <기독신문>의 주필로 섬겼었다”면서 “총신대 사태와 납골당 문제 등 총회가 어려운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기독신문사 이사회와 직원들, 총회 구성원들께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정형권 기자

〈기독신문〉 주필로서 만 4년 9개월간 재임하셨습니다. 소회를 말씀해 주십시오.
=부족한 사람이 〈기독신문〉 주필로 섬길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사설과 칼럼을 쓰면서 보람도 많이 느꼈고, 직원들과 소소한 갈등도 없이 즐겁게 보낸 것 같습니다. 비록 주필의 자리를 떠나지만 늘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재임기간 동안 〈기독신문〉은 구조조정, 재정문제 그리고 신문의 논지를 놓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언론을 정치적인 눈으로 보면 결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장이든 〈기독신문〉 이사장이나 사장이든 누구든지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해서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발행인도 〈기독신문〉이 아무리 교단지라해도 감 내놔라 배 내놔라 사사건건 간섭하는 건 잘못됐다고 봅니다. 신문사 구성원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기만하면 되는데 점령군처럼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지, 총회나 〈기독신문〉의 발전은 이뤄지지가 않습니다. 최근 몇 년간 〈기독신문〉이 그랬습니다.

언론의 기본은 편집권 존중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언론의 주권적 기능은 감시입니다. 최근 <국경없는기자회>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언론지수는 세계 68위입니다. 언론지수가 낮은 것은 우리 교단도 똑같습니다. 신문을 통해 직언을 하면 이사장을 비롯하여 사장, 주필, 편집국장 등을 불러다 놓고 훈계를 합니다. 쓴소리를 하면 총회는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신문사 직원을 마치 죄인 취급하고 심지어 폐간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독신문〉은 총회기관지입니다. 그런데 말만 기관지이지 총회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조직의 생명은 공정한 룰에서 비롯됩니다. 뭔가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의무도 수반돼야 합니다. 그런데 갑질만 합니다. 기관지라면 당연히 총회에서 어느 정도 재정지원은 해줘야 합니다. 현재 〈기독신문〉은 총회회관 임대료와 관리비도 일반 업체와 동일하게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혜택은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총회 산하 전국 교회를 통해 광고를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총회본부도 기관이고 기독신문사도 총신대, 총회세계선교회처럼 총회 산하 기관입니다. 발상을 달리하여 <기독신문>을 한국교회내 유수한 매체로 끌어올리려는 자세를 가져야 교단의 위상도 서고 장자의 명분도 선다고 봅니다. 〈기독신문〉의 브랜드와 잠재력은 엄청납니다. 그걸 살려야 합니다.

목사님은 수원에서 권선제일교회를 개척하여 목양에도 힘쓰고 계십니다.
=전도사 시절인 1984년 15평 연립주택에서 교회를 시작하여 만 35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15개월된 아들이 지금 38살이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총신대 신대원 제77회 원우회 총무를 하면서 경기도 광주 충현기도원에서 제1회 산상수련회 철야를 인도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후암제일교회 대학부 수련회를 3박 4일간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신학생 시절부터 부흥강사의 자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흥강사로 활동하다 보니까 교회를 비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도 교인들이 목회자를 신뢰하고 따라줘서 참 감사드립니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여생은 교회를 위해 더 헌신할 생각입니다.

목사님은 주필 이전에 부흥강사로 유명하셨습니다.
=저는 앞서 말했지만 젊었을 때부터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해외성회도 자주 나갔습니다. 1991년 모스크바, 타쉬켄트, 알마아타를 비롯하여 1992년 동경, 오사카, 요코하마 집회 등을 이끌었습니다. 2012년 필라델피아 크루즈성회와 2015년 빌리그레이엄 고향인 샬럿에서 한인복음화대성회를 인도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1991년 하와이 한인목회자협의회가 개최한 마약퇴치를 위한 성회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지역복음화와 민족복음화에 앞장서면서 목양에 일념하며 살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은퇴하려면 만 10년이 남았습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도 저는 호서대에서 ‘빌리그레이엄의 20세기 부흥운동에 관한 연구’로 신학석사, ‘제2차 대각성 운동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를 학위를 받았습니다. 제가 빌리그레이엄과 찰스피니를 연구한 것은 부흥운동을 하며 일평생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정리하여 후학들에게 전달하고, 제가 가진 달란트인 시와 에세이 등 좋은 글을 발표하면서 보내고 싶습니다.

끝으로 전국교회와 〈기독신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과분했습니다. 주필로서 제 정치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목양에 일념하겠습니다. 총회를 섬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준비시키고 사용하신 하나님과 모든 분들게 감사 드립니다.

 강석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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