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러시아제국의 멸망 원인을 아는가. 러시아정교회는 러시아제국의 발전과 절정이 있게 한 영적인 진원지였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턴가 러시아정교회도 세속화, 귀족화되면서 교권의 노예가 되기 시작했다. 백성들이 굶주림과 질병에 허덕일 때도 사제들은 모이기만 하면 교권 싸움과 논쟁을 하였다.

그들의 논쟁은 대부분 이런 것이었다. “십자가 성호를 그을 때 왼쪽부터 할 것이냐, 오른쪽부터 할 것이냐. 손가락을 세 손가락으로 할 것이냐, 두 손가락으로 할 것이냐. 성직자의 가운을 길게 할 것이냐, 짧게 할 것이냐. 가운 색깔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축도를 할 때 손가락을 펴고 할 것이냐, 오므리고 할 것이냐.”

그렇게 싸움만 하면서 러시아정교회는 백성들로부터 점점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때 볼셰비키들은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사상을 전략적으로 퍼트리며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결국 러시아제국은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유물론 사상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러시아에 3만 개가 넘는 교회당이 있었는데 어지간한 건물들은 다 무너지고 300여 개의 교회당만 보존하게 되었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카잔 성당은 무신론 교육 장소와 음악회를 여는 장소로 쓰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지은 피의 성당은 공산당이 감자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다.

동로마제국도 마찬가지다. 성화숭배파와 성화반대파가 나뉘어 끊임없이 성화논쟁을 하며 싸우고 분열하였다. 그때 술탄 메흐메드2세는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릴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로 말하면 동로마제국의 변방에서 끊임없이 반기독교적 정서를 부추기면서 내부분열을 하게 만들고 조금씩 무너뜨려갔던 것이다. 동로마제국은 성화숭배파와 성화반대파간의 싸움을 끝냈지만 이번에는 황제 옹립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성화숭배파 안에서도 끊임없는 교권 싸움을 하였다.

오죽하면 메흐메드2세가 콘스탄티노플 도성을 점령한 후에 성 소피아 성당의 문을 열면서 이렇게 외쳤겠는가. “내가 아는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다투고 싸움만 하고 있느냐. 그러므로 너희들에게 알라의 이름으로 평화를 주러 왔노라.” 결국 동로마제국은 메흐메드2세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그래서 성 소피아 성당과 A.D 381년에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한 이레네교회를 비롯해서 100여개가 넘는 거대한 교회 건물들이 다 이슬람 사원이 되어 버렸다. 이 얼마나 비극적 역사의 참상인가.

E. H. 카에 의하면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소통이 없게 되면 비극의 역사는 반복이 된다. 지금 우리 총회의 현실을 보자. 총대 천서 문제, 총회장 후보 문제, 정직하고 면직하는 문제 등으로 다툼만 커지고 있다. 이번 총회가 얼마나 전투적인 대치와 다툼이 있을지 불을 보듯 훤한 상황이다.

기독교 2000년 역사를 보면 교권싸움과 다툼이 대부분 병든 사회를 초래하게 했고 심지어는 나라까지 멸망하게 했다. 왜 이런 교권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가. 초심을 잃고 쓰임 받는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 하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기독교는 언제나 그 시대의 나침반이고 이정표이며 역사의 마지막 보루이자 항체와 저항인자여야 한다. 그런데도 교회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교권다툼을 하고 분열하면 틀림없이 사회에도 영적인 어둠과 혼탁함이 전염이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회에서는 논리적, 법적 논쟁과 의견을 나눌 수는 있겠지만 어느 정점에 가서는 무조건 양보하고 화해하며 격려하는 총회가 되었으면 한다. 절대로 서로 정죄하고 분열하고 폭언을 하는 총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총회는 무조건 덮고 화해하고 과거사를 사면하는 총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총회가 한국교회와 사회 앞에 싸우고 다투고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리 총대 개개인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찢겨진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 장자교단이 하나 되지 못하고 어떻게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말할 수 있는가. 장자교단이 하나 되지 못하고 어떻게 국민통합과 평화통일의 꽃씨를 뿌리며 하나 됨의 꽃길을 열어갈 수 있겠는가. 말이 안 되는 언어도단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회에서 총대들은 절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거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이지 말자. 총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자. 그렇게 해서 이번 총회에 화해의 꽃씨를 나부터 뿌리자. 총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화해의 대사가 되자. 영향력 있는 피스메이커가 되자. 부디 우리 교단을 넘어 한국교회와 민족의 역사 속에 화해의 꽃씨를 뿌리고 꽃길을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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