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개관한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증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천국의 섬’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헌신의 문준경’ 어제와 오늘 내일이 있다
‘섬마을 여인’을 천국 일꾼으로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 곳곳서 확인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존경과 인기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섬기는 자로 남았다. 기꺼이 불편과 아픔을 감수했고, 마침내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

▲ 순교기념관에 설치된 문준경 전도사의 동상.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은 위대함으로 장식된다. 문준경 전도사도 그 중 한사람이다.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리와 구원의 길을 보여주었고, 그들을 위해 고난의 최후를 받아들이며 순교자로서 한 생애를 완성했다.

증도는 그 위대한 생애를 확인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문준경’ 이름 세 글자는 ‘천국의 섬’이라는 별명을 가진 증도의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빛난다. 본섬은 물론 주변의 작은 섬들 하나하나에까지 그녀의 체취가 남아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검산항에서 짱뚱어다리로 이어지는 섬 서쪽 해안의 순교자 묘역에서 오늘의 여행은 시작된다. 황해의 거친 파도와 끝없이 펼쳐진 갯벌이 눈 앞에 펼쳐진 가운데, 고인의 목숨이 스러져간 백사장 곁에는 아담한 무덤과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식들 그리고 ‘도서복음의 어머니’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우뚝 서있다.

비문의 글귀처럼 섬 최초의 교회인 증동리교회를 비롯해, 증도 관내 10여개의 교회들과 전남 신안군 일대 100여 교회들이 모두 그녀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 신안군이 오늘날 전국 최고의 복음화율을 자랑하게 된 것에도, 특히 증도가 ‘천사의 섬’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갖게 된 것에도 그의 공로는 지대하다.

▲ 대초리교회.

문 전도사의 가슴에 죽창과 총구를 겨누던 인민군이 내뱉었다는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는 말이 어찌 보면 영 틀린 표현만은 아니었다. 이인재 김준곤 이만신 정태기 등 훗날 한국교회사에 각자 한 페이지 이상을 장식하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이 바로 그의 품에서 자라난 병아리 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묘역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져있지 않은 문준경 순교기념관(관장:김헌곤)으로 발길을 옮겨보면 그녀의 아름다운 족적들을 꼼꼼히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생과부라는 한탄스러운 처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며 복음으로 활짝 피어나 ‘남도의 백합화’로 살아갔던 그의 59년 인생을 기념관은 영상과 각종 기록으로 생생하게 재구성해 보여준다.

이성봉 목사를 비롯해 문준경 전도사를 위대한 전도자로 세운 4명의 멘토들에 대한 이야기, 가난하고 억눌려있던 사람들에게 보여준 문 전도사의 박애와 헌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남긴 유품들과 더 중요한 신앙의 유산들까지 관람하고 나면 어느 작고 초라한 섬마을 여인을 천국의 영웅으로 빚으신 하나님의 섬세한 섭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 문준경 전도사가 증도에 개척한 증동리교회.

기념관 북쪽으로는 문 전도사가 즐겨 찾았다는 상정봉의 기도바위에 오를 수 있고, 동쪽으로는 증도에 처음으로 설립한 증동리교회(김상원 목사), 서쪽으로는 방축교회(고영달 목사), 남쪽으로는 대초리교회(나충식 목사)와 우전리교회(황인석 목사)로 향하게 된다. 사방 어디에나 기도와 찬송의 둥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교회를 하나씩 순례하다보면 빛바랜 순교비, 특별한 기념 공간들, 갖가지 게시물과 주보 등에서 복음의 어머니를 향한 이곳 성도들의 애틋한 그리움과 사모하는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증도 사람들에게 주님이 베푸신 가장 큰 선물은 화려한 경치도, 거대한 염전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갯벌도, 슬로시티의 명성도 아니라 바로 문준경이라는 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 방축교회.

증도 본섬과 해당화 곱게 피는 화도를 잇는 노두길은 오늘 여정의 마지막 코스이다. 본디 두 섬을 잇기 위해 갯벌 위에 돌을 깔아 왕래하던 길을 뜻하는 ‘노두길’이 문준경 전도사 앞에서는 ‘고무신 행전’을 낳은 복음의 통로로 변모했다.

일 년에 아홉 켤레의 고무신이 닳고 해어지도록 노두길을 왕래하며,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세대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급한 마음에 이 길을 건너다 잘못해서 물이 들어차는 시각에 걸릴라치면 바다 한 가운데서 난처한 상황을 여러 번 만나기도 했다는 그 추억의 장소는 순례자의 발길을 한참동안 머물게 한다.

짱뚱어와 꽃게들이 부지런히 길 주변을 오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화도 쪽으로 건너간다. 마을 언덕 빼기에 위치한 화도교회(최인식 목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그윽하고 신비롭다. 문득 한 가지 소망이 찾아온다. 우리 각자가 가꿔야 할 또 다른 ‘천국의 섬’들에서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존재로 살아가기를. 그래서 우리의 황혼도 그녀의 삶처럼 빛나고 아름답기를.

▲ 증도 갯벌길에 조성된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묘역. 한 섬마을 여인을 천국 일꾼으로 일으켜 세우신 사용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곳에서 묵상한다.

증도는 전남 신안군에 속한 섬으로 2000여명의 주민 중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자연환경도 좋아서 논농사를 짓고 있으며, 어족 자원도 사계절 풍족한 곳이다. 특히 1953년부터 작업해 온 염전은 바닷물과 햇볕의 도움으로 국내 최고의 천일염을 생산한다. 한마디로 증도는 복 받은 섬이다.

증도가 받은 또 다른 복은 1930년대 문준경 전도사의 전도로 증동리교회를 비롯한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그의 사랑과 헌신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났으며, 문 전도사를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의 값진 피가 흐르는 땅이라는 점이다.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서 출생해서, 17살에 결혼하고 건너편 섬 증도의 시집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내 남편이 첩과 가출한 후, 시부모님을 모시고 20년을 살았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증도를 떠나 목포에서 홀로 지내던 중 전도를 받고 1927년 36살의 나이에 목포북교동성결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집사 직분을 받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던 중 이성봉 목사의 권유로 1931년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전도사로 신안군 일대에서 섬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했다. 1932년에 임자도에 처음으로 교회를 설립하고 1935년에는 증도에서 증동리교회를 개척했다. 그 외에도 신안군 일대에 여러 교회를 세웠지만 일제 말기에 교회들이 해산되는 수난을 겪었다.

해방 후 증동리교회를 되찾고 목회를 하였지만 6·25전쟁으로 또다시 수난이 닥친다. 문 전도사는 한 차례 공산군에게 끌려갔으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으로 풀려났다. 주변의 만류에도 교회를 돌아보기 위해 다시 증도로 들어갔다가 남아있던 인민군들에게 잡혀서 결국 증도 백사장에서 순교를 당했다. 이때 나이가 59세였다.

▲ 문 전도사가 걸어간 고무신행전의 상징과도 같은 증도와 화도 사이 노두길.

그가 20여 년 동안 신안군 일대에서 사역한 결과로 신안군에는 190여개의 교회가 각 섬마다 세워졌으며 증도에만 12개 교회가 설립되어있다. 또한 문 전도사의 전도와 지도로 이만신 김준곤 정태기 목사 등 수많은 목회자와 일꾼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그가 순교한 증도의 바닷가에는 순교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성결교회 총회는 2007년 기념관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전국교회가 헌금하여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을 6년여 만에 건립했다. 지금도 전국적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이 순교기념관을 찾으며 앞서간 선진들의 숭고한 순교 신앙을 본받겠다고 각오한다.
장영학 목사(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관장)

 

순교 발자취를 따라가는 ‘모실길’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증도는 42.7km에 이르는 도보 및 자전거 여행코스를 ‘모실길’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했다.

총 다섯 개의 코스 중 문준경 전도사의 유적들이 밀집된 곳은 제5코스인 ‘보물섬·순교자 발자취길’이다. 약 두 시간에 걸쳐 7km가량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가면 문 전도사의 묘역, 순교기념관, 증동리교회, 방축리교회, 기도바위 등을 두루 돌아보게 된다.

또한 증도에 ‘보물섬’이라는 칭호를 안겨준 신안 앞바다 해저유물발굴 기념비와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도 함께 감상할 수 있으며, 기도바위가 있는 상정봉 정상에 오르면 한반도 지형을 쏙 빼닮은 해송숲의 절경이 한 눈에 보인다.

제2코스 ‘갯벌공원길’을 걷다보면 우전리교회, 대초리교회에 이어 유명한 화도노두길이 나타난다. 노두길은 만조 때에 완전히 잠기기 때문에, 물때를 정확히 알아야 안전하게 왕래할 수 있다. 화도로 가면 화도성결교회와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 등을 만나게 된다.

시간 여유가 더 있으면 짱뚱어다리에서 출발해 맑은 공기와 시인들의 명작 글귀를 즐기는 해송숲으로 이어지는 제1코스 ‘천년의 숲 길’, 태평염전과 소금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제3코스 ‘천일염길’,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는 제4코스 ‘사색의 길’까지 걸어보자.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