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섭 교수(총신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 강서아이윌센터장, 중독심리학회장)

▲ 조현섭 교수
- 총신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
- 강서아이윌센터장
- 심리학 박사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부인이 필자를 찾아왔다. 이 세상이 너무 지겨워 그만 살고 싶은데 죽을 용기도 없고 아침에 눈뜨는 것이 귀찮다 했다. 자신은 하루도 기쁘게 산 기억이 없다고 하였다. 결혼 초부터 남편의 심각한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아온 분이다.

이 부인은 거의 매일 역겨운 술 냄새를 맡아야 했고, 남편의 술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아야 했다. 술을 더 많이 마신 날에는 큰 소리를 질러대 동네망신 당하기 일쑤고, 아이들을 다 깨워 횡설수설하며 행패부리고 물건을 부수거나, 말리는 자신에게 구타를 해서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가족들은 대화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집에 오면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고, 설령 대화를 한다 해도 분노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싸움을 할 때라고 했다. 자신도 어느 때부터 집 밖을 나가는 것이 두려워 피하고, 친한 친구들도 만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얼굴에 수심에 가득차고 기운이 없어 보이거나. 때로는 분노로 가득 차보이기도 했다.

설령 술 취해서 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가족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는다. 마음의 상처만이 아니다. 실제로 구타를 당해서 온몸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고 죽음의 직전까지 경험해 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온 가족이 당하는 고통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대부분 중독문제를 거론할 때면 중독자들을 어떻게 회복시키고 도와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독상담을 하다보면 술이 좋아 마시는 중독자들보다, 오히려 가족들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따라서 중독자 가족들에 대한 세심하고도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나 교회에서도 이 가족들을 위한 대책을 더 적극적으로 세워야 한다.

사실 교회 안에도 중독자 가족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가족문제를 쉽게 오픈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일단 이들의 표정은 대체로 어둡거나 위축되어 있고, 화가 나있는 표정을 보이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경계하고 친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분들이 계시면 혹시 가족 내에 어려움이 없는지를 살피되,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너무 빨리 다가가려고 하면 안 된다. 우선 먼저 천천히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그 분이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움을 청하면 그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면 된다. 그리고 중독자가 있는 가족의 상담은 단순 가족상담의 경우와는 다르다. 이 가족의 심리적인 회복을 도와주면서 남편의 중독문제를 해결하는 상담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일단 교회에서는 중독자에게 고통 받고 있는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자조모임 공간을 제공해서 이들끼리라도 서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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