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럽 교회는 무슬림이라는 쓰나미에 중증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날 똘레랑스 즉 관용이라는 다문화정책의 우산 아래서 유럽사회에 정착했다. 소위 서방세계로 불리는 기독교 세계관의 저들은 무슬림들이 시간이 가면 동화될 줄로 믿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음이 샤를리에브도 사건과 근자 유럽에서 일어나는 무슬림들의 테러로 나타나고 있다. 무슬림들은 짧은 시간에 유럽을 장악하면서 무슬림의 이상을 실현해가고 있다. 이슬람이 유럽에서 이렇게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갈등과 불만이라는 텃밭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갈등은 이슬람이 정착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결국 불만 세력들은 무슬림으로의 개종을 선택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유럽에서 이슬람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정착하게 된 배경에는 유럽사회의 양극화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현상이 어디 유럽만이겠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또한 불온세력들은 사회 양극화에 앞장서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3포, 5포, 7포, N포 세대라는 신조용어가 정착한 지 오래고 요즘은 노포세대라는 신조까지 가세하여 불안한 뇌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그런대로 묻혀져 봉합되어 있는 이런 양극화 현상에 불을 지를 자들이 바로 이슬람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벌써부터 이슬람들은 오일머니와 고도의 전략으로 국내외 정관계에 공을 들인 지 오래이다.

종교개혁 499돌을 앞에 둔 한국교회가 계속 본질에서 벗어나 방황한다면 유럽처럼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유럽교회는 19세기 이후 탈 기독교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교회는 20세기가 되면서 세속정권의 시녀노릇을 하여 세속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유럽 교회의 탈 기독교화는 기독교 서방세계를 혼돈과 방황 속에 몰아넣었고 그 방황의 흔적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의 법제화로 굳어지면서 회복 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

지금 유럽을 강타하는 이 엄청난 쓰나미가 한국교회에 몰려오고 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종교개혁의 모토였던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만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디도서의 말씀처럼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간절히 기다리자. 교회의 본질이 회복되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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