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복 목사(밥상공동체 ・ 연탄은행 섬김이)

▲ 허기복 목사(밥상공동체 ・ 연탄은행 섬김이)

1998년 외환위기 시절 쌍다리 밑에서 밥상공동체를 시작했을 때 일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져 다리 밑에서 급식을 진행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할 수 없이 급식소를 마련하기 위한 ‘천원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럼 한국에 돈이 다 어디 있지?’하며 은행에 들어가 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외환위기 시절인데도 은행에는 많은 돈이 오고가고 있었다. 그 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돈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결과 45일 만에 2000만 원을 모아 급식소를 마련했다.

요즘은 외환위기 시절보다 체감 경제가 더 어려운 실정이다. 요즘에도 단돈 ‘600원’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에너지빈곤층’이다. 에너지빈곤층이란 ‘가구소득의 10%을 난방비와 전기세로 쓰는 가구’를 말한다.

에너지빈곤층 중에서도 연탄으로 혹한기를 나는 이들은 16만8000가구에 이른다. 평균연령은 75세, 가족구성원도 거의 없어 1인 가구가 70%를 넘는다. 천식, 관절, 당뇨 등 노인성질환에 시달리며 생계수단으로 파지를 수집하거나, 정부가 주는 수급비 30여 만 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이런 분들에게 600원은 거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에서 600원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다니 절로 가슴이 미어져 온다.

이런 에너지빈곤층을 섬기는 연탄은행은 2002년 처음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원주를 중심으로 운영하다 연탄을 요청하는 지역이 많아져 현재는 서울, 인천, 전주, 속초, 부산, 대구, 대전 등 전국 31개 지역에서 운영 중이다.

연탄은행은 자원봉사자와 후원자가 주축이 된다. 후원자들은 급여끝전, 혹은 커피나 식사비 등을 아껴 그 돈을 연탄은행에 보낸다. 자원봉사자들은 도시빈민지역, 고지대 달동네, 쪽방촌, 산간벽지, 심지어 울릉도와 제주도까지 사랑의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보통 고지대에 사는 분들께 연탄을 배달하려면 손수레나 지게가 필수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몇 배는 더 힘이 드는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연탄배달 후 함께 마시는 어묵국물 한 컵에 추위도 날아가고, 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이웃들을 생각하면 봉사자들의 마음까지 훈훈해져 온다.

연탄은 일반적으로 9월말부터 다음해 4월 중순까지 필요하다. 평균 월 150장씩 소요되어 한겨울을 나려면 1000장 이상의 연탄이 있어야 한다. 연탄가격은 올해 15% 인상되어 장당 600원 정도, 배달료를 포함하면 700~800원이 든다. 하지만 연탄은행에 후원하면 후원자와 봉사자가 함께 손수레나 지게로 각 가정에 배달하기 때문에 장당 100~200원씩 절감할 수 있어, 그만큼 사랑의 연탄을 더 지원할 수 있다.

하루에 연탄 4장만 있으면 온종일 방안이 따뜻하다. 연탄불로 밥도 하고 물도 데워 세수도 빨래도 하고 또 길이 미끄러우면 연탄재를 깐다. 그럼 연탄길이 된다. 그런데 600원이 없어 연탄을 제때 구입하지 못하거나 생활이 어려워 냉방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니, 참으로 애석하다. 교회나 교인들이 깊이 생각해봐야 될 과제가 아닌다 싶다.

2015년 대한민국 인구는 5132만여 명이다. 단순 계산이지만 국민 한 명이 600원만 절약하고 이웃돕기에 써도 무려 308억이 된다. 빈민현장에 있는 목회자로서 한국교회를 생각한다면, 1000만 성도가 600원을 모아 이웃돕기에 써도 무려 60억 원이다. 60억 원이면 사랑의 연탄 1000만 장을 구입하여 월사용량 150장을 6만 6666가구에 지원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연탄은행에서 시작된 ‘사랑의 연탄 나눔’은 이제 국민운동과 국민봉사로, 또 교회사랑 운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정신을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니 복음운동으로 승화되어 전도가 되고 연탄교회까지 세워졌다.

최근 들어 안타까운 점은 경기가 침체되고 시국이 어렵다보니 사랑의 연탄후원이 작년보다 36%나 감소되어 추운 겨울이 될 것 같다는 점이다. 돈이나 헌금이나 작고 많고를 떠나 가치 있게 써야 한다. 비록 껌 값도 안 되는 600원이지만 아직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에는 가치가 있다. 모두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지만, 나보다 더 어려워 한 겨울을 냉골에서 보내야하는 이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겨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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