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입니까>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두란노)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리더스다이제스트사가 잡지와 책을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술수만 쓰고 있을 뿐, 네가 하는 일에는 나의 손길이 전혀 드러나질 않는다.”

저자는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주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책망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 책망 앞에서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이어서 그는 두 번째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너는 조금도 자라지 않고 있다. 네가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랐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 가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는 제1부에서 ‘제자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함은 그분을 주님으로 모신다는 말이다. 또한 그분을 사랑하고 찬양한다는 뜻도 된다.

초대교회 때와 비교해서 오늘날 교회의 복음은 ‘값싼 복음’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에 의하면 많은 이들이 하나님 중심적인 복음이 아니라 인간중심적인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성경구절만을 뽑아내어, 자신들만의 복음서를 만든다. 신자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할 때 영적인 건강성을 잃는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복음을 바르게 전하지 않는 이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한다. 사도행전 2장 36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이시다. 주는 ‘왕’을 의미하고 그리스도는 ‘구주’를 의미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한 후에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주’를 배제시키고 ‘구주’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왕 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 주님을 믿고 순종하여 구원을 받고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결코 쉽고 평탄한 길을 걸어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은 좁은 문과 좁은 길로 가는 삶이다.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이요, 좁은 길은 영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삶 그 자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은 빵을 반쪽으로 나누어 이웃에게 주는 것 이상이다. 빵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을 잃는다 해도 우리 자신까지 주는 것이다. 이웃사랑이 세상을 향한 사랑이라면 형제사랑은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랑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사랑이 절실하게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부터 서로 사랑하는 본을 보여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2부 ‘새 부대’에서 저자는 영적 유아기를 벗어나 성장하는 문제를 다룬다. 현대 교회 안에는 자라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은 똑같은 기도를 되풀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전이 없다.

대다수 교인들의 신앙이 장성한 어른처럼 자라지 못하고 젖 먹는 아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신앙성숙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도록 목표를 두지 않고 어느 한 지점에서 안주하고 있다.

이 책은 제자 양육이 성경지식의 전달이 아니라고 말한다. 제자 양육에서 배움은 듣는 것으로 되지 않고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제자에게 있어서 스승은 영적 아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책임은 남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제자양육을 고민하는 이들이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