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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기독교 로마제국 이야기

기사승인 [2163호] 2018.08.13  13: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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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목사(주필)

313년 2월 서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발칸을 다스리던 리키니우스 황제가 밀라노에서 만났다. 이 만남은 제국의 문제를 결정짓는 공적 회담인 동시에 콘스탄티누스의 여동생과 리키니우스가 결혼식을 올리는 사적 행사였다. 그리고 회담 결과 밀라노칙령(Edict of Milan)을 발표하였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황제 리키니우스는 밀라노에서 만나 공공의 안녕과 복지에 관한 모든 사항을 논의하였다. 먼저 우리는 공익을 위해 신께 경배하는 문제를 논의하였고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롭게 예배할 완전한 권리를 부여한다. 이 포고령은 제국 어디서나 선포되며 모든 이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이 때부터 로마제국은 ‘기독교 로마제국’으로 불리게 된다. 콘스탄티누스가 서로마 황제에 오를 때 로마는 셋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발칸반도는 리키니우스가 소아시아와 이집트의 동로마는 막시미누스 다이아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다. 313년 밀라노 칙령이 서로마에서 공포되자 동로마는 이를 무시하면서 계속 기독교도를 박해하고 있었다. 이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다이아 황제와 전쟁을 벌여 승리했고 다이아는 패배의 충격으로 중병에 걸린다. 그는 이 때 이병이 기독교도를 핍박한 죄로 인해 온 형벌로 간주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한 후 세상을 떠났다. 다이아의 죽음으로 로마는 둘로 통일되었는데 서방은 콘스탄티누스가 동방은 리키니우스가 통치하게 된다.

로마제국은 잠시 동안 평안과 안녕 속에 지나는 듯 했지만 동방 황제 리키니우스가 밀라노 칙령의 합의를 깨고 기독교를 박해하면서 또다시 기독교 박해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군대를 일으켰고 리키니우스도 이에 맞서 자신이 섬기는 신들에게 제사 신탁을 기원하면서 전쟁에 임했다. 당시 리키니우스를 돕는 이교 사제들은 “창자가 심하게 떨리는 것을 보니 이것은 폐하의 대승을 의미한다”고 요설을 떨었지만 리키니우스 군대는 324년 7월 전투에서 대패하고 동로마는 콘스탄티누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이는 제국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일로마제국의 시작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통치는 25년이나 지속되면서 로마의 발전을 이루었다. 역사는 그의 뛰어난 통치 때문에 로마 황제 중 최초로 대제(The Great)의 칭호가 주어졌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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