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국 교수(경상대학교)

박근혜 정부 들어 두 번째 광복절 특별사면이 실시되었다. 법무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4876명에게 특별사면을, 142만2493명에게는 특별감면 조치를 취했다. 지난해에 6527명에게 특별사면을, 220만6924명에게는 특별감면 조치를 취한 것에 비해 그 규모가 조금 줄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남용은 오랜 비판의 대상이다. 무엇보다도 법치주의의 정립에 심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사면의 남용’을 매우 엄격하게 경계하고 있다. 미국은 탄핵을 받은 사람이나 유죄확정 후 5년이 경과하지 않은 사람은 사면대상에서 제외한다. 또 사면취소제도를 두어 대통령의 사면권을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덴마크는 장관 출신 이상의 범죄자에게는 사면을 금하고 있다. 독일은 수사에 오류가 있었던 대상에게만 사면을 시행하고 사면에게 조건을 부과하여 이를 어기는 경우 사면을 취소하는 조건부 사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단 4차례의 특별사면만을 시행했다고 한다. 독일이 왜 법치주의의 전형적 국가인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법치주의의 문제를 넘어선 영적 판단의 기준이 있다. 하나님의 공의가 그것이다. 조금 더 세분화하면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기준이다. 정부는 중소영세 상공인과 서민들이 다시금 생업에 정진할 수 있는 재기의 기회와 함께 소외계층의 수형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배려가 특별사면의 기준이라고 한다. 확실하게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기준이라면 이번 사면은 어느 정도 인애의 기준에 부합된다.

그러나 특별사면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의 주장에 다양한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첫 번째는 인애와 공평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수형자의 병 때문에 잔형을 면제하는 사례를 보자. 만일 수형자의 병 때문에 형을 면제한다면 그 수형자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고통을 받거나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불공평한 처분이 된다. 범죄자들이 마스크에 휠체어를 타고 법원을 들락거리다가 사면을 받는 즉시 거리를 활보하는 꼴사나운 모습들이 우리 사회의 공의를 해치고 있다. 병이 든 수형자가 있으면 국가가 적절히 치료하는 것이 인애이며 법이 정한 형량은 그대로 유지하는 게 공평이다.

정부가 취한 특별사면의 두 번째 문제는 특별사면의 대상이 주로 경제사범이라는 점이다. 경제사범의 특별사면이 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함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경제범죄자들을 특별히 사면한다면 그러한 경제적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사범일수록 더욱 엄격하게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국가경제를 위해 바람직하다. 김두얼 교수의 연구를 보면 경영범죄자가 엄격한 처벌을 받을 때에 해당 기업의 수익률이 회복된다고 한다.

세 번째 문제는, 한상희 교수의 표현처럼, 생계형 범죄자의 사면이 사실은 소수 권력층의 특별사면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SBS의 <마부작침> 기획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노태우 정권 이후 사면된 권력층 특별사면이 총 666건인데 이 중 경제인이 261건, 정치인이 242건, 고위공직자가 146건, 대통령 친인척이 17건 순 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회계부정행위로 법적 제재를 받은 회사임원의 93%가 해고되고 최고경영진들은 재취업이 불가능하며 재산상의 제한도 심각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범죄자들은 빈번히 경제살리기를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았는데 2번 이상 사면을 받은 사람도 18명에 이르고 있다. 기업총수라는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고 제자리로 복귀하기 때문에 기업총수들은 더욱 더 법을 지킬 생각이 없게 된다. 한국의 특별사면은 돈만 있으면 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유전무죄’를 조장하는 ‘사법부 자유이용권’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려면 불공정한 사면은 삼가고 권력층일수록 더욱 사면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이처럼 불공정하고 무법적 사회가 되는 것은 사회지도층이 불공정하고 무법적이기 때문이다. 특별사면은 독일처럼 부당하게 처벌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간곡히 당부하는 것처럼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은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 길이요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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